동이주류 천자 요임금 순임금이 동이주류 숙신(肅愼)의 후손이며, 요임금 순임금은 하나라의 조상이고, 하(夏)나라는 은(殷:商)나라의 조상이며, 은(殷)나라는 기자주조선 나라의 조상이다. 조선(朝鮮)이 곧「주(周)」나라이며 주(周)나라가 즉 조선이다. 설문해자에 주(周) 즉 조선이라 하였다. 여기서 기자조선(箕子朝鮮)에 대하여 말하자면 주조선(周朝鮮) 창건자
고서지리지(古書地理志)(책이름)에 동해군(東海郡)이라 실려있는 용구(容丘)(도읍지)가 있는데, 고(古) 구(丘)요 씨(氏)는 저(氐)字로 통한 결과와 같다. 용성(容成)의 성(成)자는 이것이 씨(氏) 혹은 저(氐)의 형화(形訛)(비슷함)인 즉 자연 이것이 동이인이다. 대황남경(大荒南經)에는 제준지처(帝俊之妻) 희화(羲和)는 아들 열
국어초어(國語楚語)에 의하면 기자주조선(箕子周朝鮮) 무천자(武天子 : BC1122)는 동이요제(東夷堯帝)가 중려(重黎)의 후손들을 길러 옛것을 잊지 않도록 다시 전지(典之)하였으니 이로써 하상(夏商)에 이르렀다. 그런 까닭으로 중려(重黎)씨는 세세(世世)로 천지를 나누어 연구하여 그 이치를 펼친 자이니 설명컨대 동이(東夷)는 확실히 역법(曆法)의 세족(世族
황제헌원(黃帝軒轅:B.C 2679)씨는 염제신농씨의 후예이며, 자칭 백제자(白帝子)라 하였고, 누조(嫘祖)와 혼인하여 제1왕자인 현효(玄囂)와 제2왕자인 창의(昌意)와 제3왕자인 소호금천(小昊金天)씨를 낳았다. 황제의 제1왕자 현효의 증손이 제요도당(帝堯陶唐)씨이니, 황제(黃帝)의 고손자이며, 제요(帝堯)인 방훈(放勳)이니, 이 분
유소(有巢 : BC3898)씨는 이전 100여대가 지나 삼황(三皇) 중 최초로 역사 속에 등장하였는데, 때는 결승(結繩)시대이다. 그는 오색의 빛을 발하였고, 긴 팔을 가졌으므로 이름 하여 유소라 하였다. 유소의 뒤를 이어 수인씨가 유소씨의 후예로 천하를 다스렸으니 유소의 후계자라 하였고, 장자 선성편(繕性篇)에는 복희씨의 앞에 천하를 다스린 왕이 수인씨라
조선 사회는 안에서 성장하고 있던 근대적인 요소를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한 채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열강에 문호를 개방하였다. 이후 정부와 각계각층에서는 근대화하려는 노력을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일구는 강압적인 식민 통치를 통하여 우리를 지배하였다. 이에 맞서 우리는 국내외에서 무장 독립 투쟁, 실력 양성, 독립 외교 활동 등을 벌여 일구들에 줄기차
16세기 이후 유럽에서는 근대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즉, 절대 왕정, 시민 혁명, 산업 혁명을 거치면서 근대 유럽 세계가 확립되었다. 지방 분권적인 봉건 체제가 무너지면서 국왕 중심의 중앙 집권 체제를 추구하는 절대 왕정 국가가 성립하였다. 절대 왕정은 관료제와 상비군을 정비하였고, 이를 위하여 중상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식민지 획득에 힘썼다.절대 왕정에
발달 배경조선 초기에는 민족적이면서 실용적인 성격의 학문이 발달하여 다른 시기보다 민족 문화가 크게 발달하였다. 당시의 집권층은 민생 안정과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위하여 과학 기술과 실용적 학문을 중시하고 문화의 발달에 노력하였으며, 우리의 문자인 한글을 반포하여 민족 문화의 기반을 넓히고 더욱 발전할 수 있는 터전을 닦았다.15세기 문화를 주도한 관학파
조선은 왕과 양반 관료에 의하여 통치되었다. 왕은 최고 명령권자로서 통치 체제의 중심이었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 말에 성리학(性理學)을 정치 이념으로 하면서 지방에서 성장한 신진 사대부가 지배층이 되어 정국을 이끌어 나갔다. 그러나 15세기 말부터 새롭게 성장한 사림이 16세기 후반 이후 정국을 주도해 나가면서 학파를 중심으로 사림이 분열하여 붕당을 이루었
삼황오제(三皇五帝)인 요제단군왕검조선(堯帝壇君王儉朝鮮)의 뒤를 이어 순우탕문무(舜禹湯文武)로 이어진 조선조(朝鮮朝)는 목천자(穆天子)이후 춘추전국인 삼한시대 말기에 들어선 B.C 440년에 국호를 연조선(燕朝鮮)에서 대부여(大夫餘)로 개칭하였고, 장당경(藏唐京)으로 도읍을 옮김으로써 새 시대가 열리려는 조짐이었다. 오랜 역사 동안 제정의식(祭政儀式) 시대인
1. 왕건 태조 신성대왕 통일신라 계승고려태조(高麗太祖) 왕건(王建)의 자(字)는 광도(廣圖)이며, 강도(江都)인 강소(江蘇)에서 일어나 A.D 847년 정묘(丁卯)에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에서 촉왕(蜀王)으로 있다가 고려천자(高麗天子)에 등극하였다. A.D 918년 6월 15일에 국호를 고려라 하고 A.D 919년에 사천성(四川省) 송악(松岳)으로
우리를 동이주류라 이른다. 그리고 요제(堯帝) 단군왕검을 우리의 조선나라(朝鮮那羅) 건국시조로 일컫고 있다. 그런데 막상 단군왕검이 누구냐고 지적하여 말할 때는 그 답이 없다. 왜냐면 막연히 단군왕검이지 그가 누구의 자손이며 그 부모는 누구이며 형제는 어떠한가? 그리고 그 자손은 어떤 사람들인가에 대하여 불확실하기 때문에 말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우리
(1) 동이 한인 삼황천자 재위년전안동오주씨는 삼황의 호는 천황, 지황, 인황이라고 했다. 진박사에 따르면 복희 신농은 수인씨 자손이 된다 했다. 공안국의 상서서에 의하면 고자 포희씨가 왕천하할 때 비로소 팔괘를 그려 서설을 만들고 이로써 결승을 대신하여 정사를 폈으니 이로 말미암아 문적이 생겼다. 복희신농황제의 글을 삼분(三墳)(책 이름)이라 하니 천하대
(1) 한조선(韓朝鮮) 하나라(夏那羅)우(禹 : BC2224)는 석에서 출생했다고 한다. 수소자(隨巢子)(사람 이름)에 따르면 우 임금은 곤석(崑石)에서 출생했고, 역사(繹史)(책 이름) 제 11권(卷)과 회남자(淮南子)(책 이름) 수무훈(修務訓)에 의하면 우임금은 석(石)에서 출생했으며, 고유(高誘) 주(注)에 의하면 우의 어머니는 수기(修己)씨인데 돌에
(1) 염제(炎帝)는 신농(神農)씨염제신농(炎帝神農:B.C 3071)씨는 복희씨의 후예이며, 조이(鳥夷)의 후손으로 모후여등(母后女登)이 용감(龍感)(용의 감응)으로 염제(炎帝)를 낳았다. 염제는 우두인신(牛頭人身)이라 하였는데, 튼튼한 몸과 우직한 성격으로 천하를 제도하신 성인이시며, 백초(百草) 제약(製藥)으로 인명을 구한 의성(醫聖)이기도 하다. 동서
전안동오(箋按東吳) 주(朱)씨는 삼황(三皇)의 호가 있는데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이라 하고, 또 유소(有巢)씨와 수인(燧人)씨, 복희(伏羲)씨, 염제신농(炎帝神農)씨라고도 하며, 복희(伏羲)씨, 여와(畬囮)씨, 염제신농(炎帝神農)씨라고도 한다. 다만 여러 설이 분분하여 일치하지 않는다.공안국(孔安國)의 상서서(尙書
우리 한국(桓國)의 건국(建國)이 인류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인류가 문명의 이기인 불의 빛을 통하여 맹수를 쫓고 자신들을 보호하면서 음식을 익혀먹는 법을 교화하여 한국(桓國)을 다스리니, 이르되 인류문명의 최고 시원(始原)이 되었다. 이런 세월은 아득한 선조성인(先祖聖人) 한인(桓因)(因桓: 아담 사람: 口東山) 천황(天皇)으로부터 시작하여 우뚝한 천제
서이(西夷)(Sumer)계삼위태백(三危太白) 천산곤륜(天山昆侖) 문명은 동서로 연결되는 히말라야와 힌두스텐 평원, 타림 분지를 거쳐 조선천축국 현 인도 아리안계가 수메르 문명의 주역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복희(伏羲)씨 때, 하도(河圖)가 표의문자로 전하여졌으나, 요 단군왕검(堯 壇君王儉)때, 산수가림다(刪修加臨多)(인류세계 최초로 나타난 표음문자를 말함)
동이지류남방(東夷支流南方) 강수(江水)와 인도지나(印度支那))계지나는 북방계(北方系)를 그냥 동이(東夷)라 하고, 자신들은 지나(支那)라 하기 때문에, 본인은 학명 상, 동이(東夷)이면서 북방주류라 하고, 동이(東夷)이면서 남방지류 또는 지나라 부른다. 왜냐하면 동이(東夷)와 서이(西夷)의 구별은 천산곤륜 중심 요동계인 동이와 천산곤륜 중심 요서계인 서이(
동이주류 북방하수계(東夷主流 北方河水系)삼위천산곤륜에서 싹튼 하수(河水) 문명은 동방한인천황(아담사람들)으로부터 그 도맥(道脈)이 이어져 한웅천황인 동이유소씨(B.C 3898)에서 수인씨(B.C 3739)로 내려오면서, 결승(結繩)으로 나라를 다스렸고 복희씨(B.C 3572)에 이르러 하도(河圖)로 집대성하니, 이른바 복희씨는 인류문자의 조상이 되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