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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관리 등용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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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8.24  15: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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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균택 전 대전대 부총장

조선 시대의 관리는 주로 과거와 음서, 천거를 통하여 선발되었다. 과거에는 문관을 뽑는 문과와 무관을 뽑는 무과, 기술관을 뽑는 잡과가 있었다. 문과는, 3년마다 실시하는 정기 시험인 식년시와 부정기 시험인 증광시, 알성시 등이 있었다. 문과는 식년시의 경우에는 초시에서 각 도의 인구 비례로 뽑고, 2차 시험인 복시에서 33명을 선발한 다음, 왕 앞에서 실시하는 전시에서 순위를 결정하였다.

문과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소과에 합격하여 생원이나 진사가 되어야 했으나, 후에는 큰 제한이 없었다. 소과 합격자는 성균관에 입학하거나 문과에 응시할 수 있었으며, 하급 관리가 되기도 하였다.

무과도 문과와 같은 절차를 거쳐 치러지는데, 최종 선발 인원은 28명이었다. 기술관을 뽑는 잡과도 3년마다 치러지는데, 분야별로 정원이 있었다.

또, 과거를 거치지 않더라도 고관의 추천을 받아 간단한 시험을 치른 후 관직에 등용되거나 음서를 통하여 벼슬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천거는 대개 기존의 관리를 대상으로 하였고, 벼슬하지 않은 사람이 천거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음서의 혜택을 받는 대상도 고려 시대에 비하여 크게 줄어들었고, 음서 출신은 문과에 합격하지 않으면 고관으로 승진하기도 어려웠다.

인사 관리 제도도 관직 제도의 정비와 지배층의 증가에 따라 새롭게 정비되었다. 권력의 집중과 부정을 막기 위하여 상피제를 마련하였고, 인사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5품 이하 관리의 등용에는 서경을 거치도록 하였다. 아울러 고관이 하급 관리의 근무 성적을 평가하여 승진 또는 좌천의 자료로 삼았다. 이로써 조선은 합리적인 인사 행정을 위한 제도가 갖추어져 관료적 성격이 더욱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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