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우주의 실체인 「이기」를 理와 氣로 나누어 살펴보았는데 여기서는 이들은 서로가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1) 二者一体(二而一) 不可分이다.

理와 氣는 다만 이론상으로만 분리가 가능한 둘(二者)이지만 실제로는 나누어져 있지 않은 하나(一体)이다. 만일 이들을 서로 분리해 놓고 관계없이 만든다고 가정한다면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죽은 거나 다름없어 활동이 정지되므로 그때에는 만물이 생성되지도 소멸되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理와 氣는 서로가 분리되어 있지도 않고 분리해 놓을 수도 없는 살아 있는 하나의 활동체로서 이자일체(二者一体) 즉 「둘이면서도 하나(二而一)인 것이다.

그런데 이 「둘이면서도 하나」라는 말을 뒤집어 보면 곧 「하나이면서도 둘(一而二)이라는 말이 된다. 「둘이면서도 하나」라는 말은 理와 氣가 「둘」이라고 하더라도 서로가 간격도 없고 선후(先後)도 없으며 싸움도 없으니 혼합된 「하나」로 볼 수밖에 없고, 「하나이면서도 둘」이라는 말은 「이기」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묘합(妙合)되어 있는 「하나」이지만 理(에너지법칙)는 理(시간성)요 氣(에너지)는 氣(공간성)로서 섞이지 않고 구별되므로 「둘」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理와 氣는 「둘이면서도 하나」요 「하나이면서도 둘」로서 마치 인간에 있어서의 정신(心)과 육체(身)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인간의 심(心)과 신(身)도 「둘」이되 곧 한사람을 이루고 있으며 그 한사람은 또한 心과 身의 「둘」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육체(物)만이 근원이 되어 있지도 않고 또 정신(心)만이 근원이 되어 있지도 않은 물심일체(物心一体)의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내 몸이 있다는 것도 정신이 있어서 아는 것이며, 내 정신이 있다는 것도 또한 육체가 있어서 알게 될 뿐이다. 그러므로 심신(心身)도 「둘이면서 하나」요 심신이 사실상 분리될 수 없으므로 「하나이면서도 둘」인 것이다. 우리는 정신이 없이는 물체를 볼 수가 없다. 아무리 순수한 물체라 할지라도 그것은 누구인가의 정신이 보며 생각하는 점에서 그것은 정신적 물체이며 또 아무리 순수한 정신이라도 그것은 감각적인 물체를 통하지 않고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육체적인 결함이 있을 때 직접 정신적으로도 그만한 영향을 받게 되며 반대로 정신적인 타격을 받았을 때에도 곧 육체적으로 그만한 결과가 외모에 나타나게 되는 것을 보거나 그밖에 외관상으로 험악하게 생긴 사람은 곧 마음도 불선하며 반대로 마음이 선량한 사람은 곧 외관상으로도 선량하게 뵈는 것은 다 심(心)의 표현이 곧 신(身)으로서 심신이 「둘」이되 곧 「하나」임을 입증해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유물론자가 일방적으로 물질만을 정신보다 근원으로 보는 견해나 유심론자가 정신만을 물질보다 근원으로 보는 견해가 다 같이 편견임을 지적하고 이기일원(理氣一元) 철학에 근거한 물심일원(物心一元)철학의 타당성을 밝혀두는 바이다.

2) 相互不可缺이다.

理와 氣는 서로가 불가결(不可缺)의 관계에 있다. 즉 理는 氣가 없어서는 안 되고 氣는 또한 理가 없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예컨대 도공(陶工)은 도토(陶土)가 없이는 도기(陶器)를 만들어 낼 수 없듯이 理는 氣가 없이는 만물을 생성할 수 없으며 동시에 도토는 있되 도공이 없어도 도기는 만들 수 없듯이 氣만 있고 理가 없어도 만물은 생성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氣는 理가 없어서는 안 되고 理는 또한 氣가 없어서는 안 되는 바 서로는 함께 상대가 절대로 필요한 상호불가결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즉 氣는 理가 하는 일을 못하며 理는 氣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하므로 氣는 理가 절대 필요하고 理는 또한 氣가 절대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서로는 상대가 있기 때문에 비로소 만물을 생성하는 제구실을 하게 되므로 자기가 제구실을 하려면 상대를 살게 해 주어야 하는 호혜공존(互惠共存)의 상호의존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마치 인간에 있어서의 남녀 한 쌍의 부부와 같은 관계인 것이다. 부부도 남편은 부인이 없어서는 안 되며 부인은 또한 남편이 없어서는 후손을 이어갈 수 없으므로 서로는 상호불가결이자 호혜공존의 상호의존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3) 평등하되 차이가 있다.

理와 氣는 어느 하나를 더 우월시하거나 낮게 평가해서도 안 되는 상하(上下)관계 아닌 좌우(左右)관계로서의 평등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시계에 있어서 그 속의 여러 가지 부속품은 다 차이가 있어 그 차이에 따라 맡은 역할이 다르지만 시계의 목적인 시간을 알려주는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어느 것을 막론하고 하나도 낮게 평가할 수 없으므로 동등하게 귀중하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4) 참고문헌

끝으로 理와 氣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조시대의 대표적인 성리학자 「기고봉」과 「이율곡」이 남겨 놓은 문헌을 참고해 보기로 한다.

① 기고봉(奇高峰, 1527~1572)
대저 理는 氣의 주재(主宰)요 氣는 理의 재료이다. 둘(理와 氣)은 본래 나누임이 있지만 그것이 사물에 있어서는 혼합되어 있어 갈라 놓을 수 없다(夫理, 氣之主宰也, 氣, 理之材料也. 理者固有分矣, 而其在事物也, 則固混淪, 而不可分開. 高峰上)라고 말했다.

② 이율곡(李栗谷, 1536~1584)
대저 理란 것은 氣의 주재요 氣란 것은 理가 타(乘)는 것이다. 理가 아니면 氣가 뿌리박을 곳이 없고 氣가 아니면 理가 의지할 데가 없다. 이미 둘(二物)도 아니오 또 하나(一物)도 아니다. 하나가 아니므로 하나이면서 둘이오 둘이 아니므로 둘이면서 하나이다.

하나가 아니라는 것은 무엇을 말함이냐? 理와 氣가 비록 서로 떠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묘합하는 가운데서 理는 理요 氣는 氣로서 서로 섞이지 않으므로 하나가 아니다.

둘이 아니라는 것은 무엇을 말함이냐? 비록 理는 理요 氣는 氣라 하더라도 혼합하여 간격이 없어서 선후(先後)도 없고 이합(離合)도 없으니 그것이 둘임을 볼 수 없음으로써이다.

이런고로 동(動)과 정(靜)이 끝이 없고 음과 양이 시(始)가 없으며 理가 무시(無始)하니 氣도 또한 시작(始)이 없는 것이다(夫理者, 氣之主宰也, 氣者, 理之所乘也. 非理則, 氣無所根柢, 非氣則, 理無所依著. 卽非二物, 又非一物. 非一物故一而二, 非二物故二而一也. 非一物者何謂也, 理氣雖相離不得, 而妙合之中 理自理氣自氣 不相挾雜 故非一物也. 非二物者何謂也, 雖 曰理自理氣自氣, 而渾淪無間 無先後 無離合 不見其爲二物也. 是故動靜無端 陰陽無始, 栗谷全書答成浩原卷十書二)라고 말했던 것이다.

<순리학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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