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신의 모습은 무형체임으로 볼 수는 없으나 스스로의 법칙(自己法則)에 따라 응결되면 유형체인 만물이 출현된다. 그러므로 만물의 입장에서 볼 때 만물은 조상신에서 비롯되므로 조상신은 곧 만물의 시조신(始祖神)이 되는 것이다.

유일신론은 신과 우주를 대립시켜 우주와는 독립된 신(인격신)을 설정하지만 범신론은 우주(자연)와 신의 구별이 따로 없고 우주대자연의 실체인 「조상」이 곧 신이라고 보는 것이다. 신이란 곧 만물을 생성(창조)하고 소멸하는 원인 즉 제 一원인을 말하는데 조상이 제 一원인인 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으므로 사실상의 시조신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조상신의 주장이다.

조상신을 사실상의 신으로 본다면 조상신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몸과 마음은 둘로 나누어져 있지 않은 하나이지만 몸은 공간성인 에너지를 말하고 마음은 시간성인 자연법칙을 말하므로 다음에서 둘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1. 에너지(氣), 즉 조상신의 몸(体)

조상에 있어서의 에너지(氣)는 현대물리학에서 말하는 에너지, 공간성(空間性)에 해당된다. 따라서 에너지는 조상신의 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주공간에 차 있는 에너지로 이루어진 조상신의 몸은 항상 시간성인 에너지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나 그 형상은 본래 무형체이기 때문에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성인 에너지법칙에 따라 공간성인 에너지가 모이고 응결되어서 그 모양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이 곧 밤하늘에 번쩍이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인 것이다. 우리는 이 무형체인 에너지가 에너지법칙에 따라 형상화되어 나타난 무수한 별들을 보고 조상신의 위대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순간에도 비록 멀어서 볼 수는 없으나 어느 곳에서는 새로운 유형체(有形體)의 별이 창조되고 있는 것이며 또 다른 한편에서는 늙고 오래된 별이 공중에서 파괴되고 폭발하여 무형체(無形體)인 이기로 변형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별들은 별들대로 주변의 별과의 관계 속에서(태양과 지구와의 관계와 같이) 생물이 살기에 알맞은 별들이 생기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인 것이다. 이 지구가 발생되고 진화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46억년의 기나긴 세월 속에 많은 생물과 함께 인류는 탄생된 것이다. 이 모든 생물과 인류인 유형체는 무형체인 에너지가 자연법칙에 따라 응결된 것이므로 유형체인 만물은 어느 것을 막론하고 무형체인 이기로 되지 않은 것은 없는 것이다. 「나」라고 하는 개체도 에너지가 자연법칙에 따라 응결된 것이므로 이기로 인한 유형체인 것이다. 따라서 조상(小理氣)이자 소조물주(小造物主)인 것이다.

위와 같은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조상신」의 몸은 비록 볼 수 없으나 삼라만상이 그를 통하여 출현되었으므로 「조상신」의 몸은 삼라만상의 배후에 있는 무형체의 에너지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무형체의 조상신의 몸인 에너지가 마음인 자연법칙에 따라 지구와 태양으로 출현되고 그들의 관계 속에서 정교한 생물이 출현되었음을 볼 때 신기하고 위대하고 견줄 데 없는 조상신의 능력과 뜻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마땅히 그 능력과 뜻(理)을 궁리(窮理)하여 찾아내서 그에 보다 잘 순응해서 살아가는 순리생활이 이루어질 때 참다운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 자연법칙(에너지법칙, 시간성) 즉 조상신의 마음(心 )

조상신의 에너지법칙은 시간성(時間性)에 해당된다. 따라서 에너지는 조상신의 마음(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으로서 정신이 나가서 없게 되면 죽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조상신도 이 자연법칙이 없어졌다고 가정할 경우 죽어서 움직이지 못하고 고정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조상신은 항상 스스로의 법칙(마음)인 에너지법칙에 따라 에너지를 모으고 응결케 하여 유형체인 만물을 생성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만물에 내재하고 있는 자연법칙(존재법칙)에 따라 만물이 소멸되어 무형체인 인간으로 환원되기도 하는 것이다.

에너지법칙은 유형체의 만물에 내재하고 있는 자연법칙(존재법칙)을 말하기도 하며 종교적으로 말하면 조상신의 마음 즉 정신에 해당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의 마음인 정신도 눈으로 볼 수는 없고 다만 느끼고 이해할 수 있을 뿐인 것 같이 조상신의 마음인 에너지법칙, 자연법칙, 존재법칙도 눈으로 볼 수는 없고 다만 느끼고 이해할 수 있을 뿐인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과 조상신의 마음은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수시로 변하므로 불규칙적이지만 조상신의 마음은 영원불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마음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마음에 드느냐 안 드느냐에 따라 바꾸어지므로 일정하지 않지만 조상신의 마음인 에너지법칙, 자연법칙(존재법칙)은 편파성이 없기 때문에 같은 조건일 경우 언제나 지공무사하고 일정한 것이다. 순리생활이란 지공무사하고 일정한 조상의 에너지에 따라 살아가는 생활을 말하며 종교적으로 말하면 만물의 시조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자율생활을 말하는 것이다.

3. 결론

고대와 중세의 우주관에서 보면 신인동형동성자(神人同形同性者)로서의 인격신이 있어서 그에 의해서 만물이 창조된 것으로 알았고 인간의 길흉화복도 그에 의해서 내려지는 것으로 알았으므로 그에 기도드리고 복을 비는 종교가 발생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우주관은 현재 붕괴되어서 믿지 않고 있으며 21세기 이후의 새로운 우주관은 만물의 생성소멸은 조상신의 집산(集散)과정에 불과함을 깨닫게 됨에 따라 조상의 자연법칙에 어떻게 대처하고 따르느냐에 따라 인간의 길흉화복이 좌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므로 앞으로는 조물주인 조상신의 뜻(자연법칙)에 따라 살아가는 새로운 종교시대로 진입하는 대전환기임을 알고 그에 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인격적인 유일신관은 神도 인간들처럼 기뻐하고 격노하며 번제를 흠향하고 찬양을 받으면 즐거워할 것이라고 했으니 인간들은 신에게 밉게 보이면 격노할 것으로 생각하고 번제를 올리며 찬양을 하는 기복주의로 흐르게 되어 마침내 신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고 비난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범신론적 조상신관은 에너지법칙, 또는 자연법칙(존재법칙) 자체가 영원토록 불변하므로 그에게 요청하는 기도가 쓸데없다고 생각되므로 다만 자연법칙을 깨달아서 그 자연법칙에 잘 따르고자 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자연법칙을 깨닫기 위한 방편으로는 수시로 자연법칙을 궁리(窮理)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 요청해서 들어준다고 믿는 기도라면 그것은 인과법칙(결과가 있는 곳에 원인이 있다고 하는 법칙)을 무시하는 결과가 된다고 말한 아인슈타인도 모든 현상간의 인과법칙을 확신하는 사람이라면 우주운행에 간섭하는 어떤 존재자 따위의 이념을 잠시라도 가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점을 생각한다면 요청해서 들어줄 것이라고 믿고 기도한다는 것은 인과법칙을 무시하는 결과가 되므로 현대인으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범신론적 조상신관은 어떤 불행이나 고뇌가 있다면 율법주의자가 말하듯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 데서 온 죄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인간자신이 궁리하지 않고 깨닫지 못한 그 자연법칙에 잘못 순응한 탓으로 돌리고 그 원인을 자신에게 물어서 자연법칙을 깨닫고 그 깨달은 자연법칙에 따라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상신관은 의타적(依他的) 종교가 아닌 자력적(自力的) 종교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자기자신의 도움을 타력에 의존하지 말고 자력에 의존하라는 뜻이므로 여기서 말하는 하늘은 인격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대생명체이자 만물의 조상신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조상신에게는 도움을 청하는 기도가 필요 없고 인사(人事)를 다하고 천명(天命)을 기다리는 마음자세가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순리학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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