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균택 (전) 대전대 부총장

① 함주(咸州)는 지금 봉천개원현(奉天開原縣)인데 요녕성(遼寧省) 개원현(開原縣)을 말한다.
② 영주(英州)는 광동성(廣東省) 영덕현(英德縣) 동쪽을 말한다.
③ 웅주(雄州)는 직예성(直隸省) 웅현(雄縣)이다.
④ 길주(吉州)는 강서성(江西省) 길안현(吉安縣)이다.
⑤ 복주(福州)는 민주(閩州) 풍주(豊州) 천주(泉州)라 이름하였다. 지금 복건성(福建省) 민후현(閩後縣) 동북쪽이다.
⑥ 의주(宜州)는 의주(義州)라고도 하였다. 지금 봉천의현(奉天義縣) 동북 25리에 있다.
⑦ 공험진(公嶮鎭)은 공언각진(公堰塙鎭)인데 안휘성(安徽省) 동성현(桐城縣)이다.
⑧ 통태진(通泰鎭)은 통해진(通海鎭)이다. 강소성(江蘇省) 남통현(南通縣)에 있다.
⑨ 평융진(平戎鎭)은 평융군(平戎軍)을 말한다. 하북성(河北省) 신진현(新鎭縣)이다.

또 임안(臨安)은 남송(南宋)의 도읍지로 절강성(浙江省) 항현(抗縣)이다.

국사교재편찬회가 펴낸 신고한국사에서는 ‘예종 2년(1107) 윤관(尹瓘)의 건의에 의해 여진족 정벌을 단행하였다. 윤관은 정평(定平)을 지나 여진인(女眞人)의 본거지인 함흥(咸興)지방을 점령하여 홍원(洪原)까지 이르고 함주(咸州)를 중심 9성((함주(咸州), 영주(英州), 웅주(雄州), 길주(吉州), 복주(福州), 의주(宜州), 공험진(公嶮鎭), 통태진(通泰鎭), 평융진(平戎鎭))을 축조하여 군사를 주둔시키고 남방의 민호(民戶)를 이주시켜 9성에 살게 한 후, 다음 해(예종(睿宗) 3년 1108)에 개선하였다.’ 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본 바 정평(定平)은 정평현(定平縣)으로 감숙성(甘肅省) 영현(寧縣) 남쪽 60리에 있는데 여진의 땅으로 가는 길목이다.

또한 함주(咸州)는 봉천개원(奉天開原)인데 ‘윤관의 9성은 여진본거지인 함흥지방을 중심 압록강 두만강 이남의 땅이라 새로 이름 지어진 함주, 영주, 웅주, 길주, 복주, 의주, 공험진, 통태진, 평융진을 지칭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왜곡된 역사적 사실은 참담한 일이다.

그리고, ‘여진(女眞)의 아골타(阿骨打)가 황제라 자칭하고 금(金)을 건국하고 (고려 예종 11년 1115) 금(金)은 송과 동맹 후 송(宋)의 변경(汴京)인 개봉(開封)을 함락하니, 송(宋)은 할 수 없이 남쪽으로 옮겨 임안(臨安)에 도읍하고 송고종(宋高宗)이 즉위하였다. 이것이 남송(南宋)이다.’ 라고 쓰여 있는데 여기서 임안(臨安)은 절강성(浙江省)이다.

또한, ‘아라비아(Arabia)상인을 통해 우리나라가 KOREA(corea)로 서양에 알려졌다. 이때 무역항은 예성강구(禮成江口)의 벽란도(碧蘭渡)로 개경(開京)의 문호역할을 하였다.’ 라고 한 부분에서 예성강(禮成江)은 예사강(禮社江)이며 예사강(禮社江)의 벽란도(碧蘭渡)는 운남성(雲南省)에 있는 원강(元江)이며 이곳은 국제 무역항으로 안남송(安南宋) 아라비아 상인들이 와서 무역한 곳이다. 한반도 예성강이 아니며, 사천성(四川省)에 있는 개경(開京)의 문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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