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전통윤리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부모와 어른을 공경하고 받들던 아름다운 풍속, 이웃 간의 정을 쌓고 상부상조하던 풍속,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정을 중요시하고, 예법과 의리를 소중히 여겨 목숨까지 바치던 절의 정신, 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지녀 왔던 소중한 전통 윤리들이다. 그런데 최근에 이러한 전통 윤리들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 그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전통 윤리의 약화는 서구 문화가 보편화됨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원리로 하는 서구적 정치․경제 제도가 세계적으로 보편화됨에 따라 산업화와 근대화를 강조하여 전통의 특수성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전통 문화와 전통 윤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전통 윤리의 약화 원인에 대한 탐색이 다음과 같이 이루어지고 있다.

첫째, 전통 윤리 약화는 무엇보다 서구 중심의 가치가 보편화되면서 전통은 낡은 것, 버려야 할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즉, 서구 가치의 보편화는 전통 가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낳았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 전통 문화와 전통 윤리에 대한 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서구적 가치가 보편화되었다 하더라도 정체성이 확고하게 정립되어 있었다면, 전통 윤리가 약화되는 결과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구 강점기를 겪고 서구 문물이 무분별하게 도입되고 급격히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정체성을 정립할 겨를이 없었다는 것이다.

셋째,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서 전반적인 사회의 윤리 부재 현상을 들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윤리의 침체는 도덕 불감증에 기인하는 것으로, 이러한 도덕 불감증은 윤리 의식 자체를 마비시킴으로써 전통 윤리의 가치는 물론, 그 본질마저 부정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 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인들을 극복하고 우리 전통 윤리를 다시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최근 들어 본격화되고 있다. 그러한 움직임은 전통 윤리에 대한 일시적인 유행이나 관심의 표현만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자신의 전통 문화를 지키지 못하거나 전통을 무시하는 나라는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국가 정체성 또한 확립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국토가 협소하고 자원이 풍부하지 못한 경우, 전통 문화와 전통 윤리는 국가 이미지 제고 및 경쟁력 확보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외국인들이 보고자 하는 한국의 참된 모습은 인사동이나 도자기 및 석굴암 등의 외형적 문화뿐만 아니라, 저변에 담겨 있는 전통적 삶의 가치들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김치나 된장에 녹아 있는 우리 토속 문화의 깊은 맛이며, 그 속에 담긴 인간적 삶의 체취들이다. 그렇다면 전통 윤리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우리나라 국민들은 우리 문화나 전통 윤리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겉으로 드러난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지나친 열등의식을 가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 전통 문화를 생활 속에서 찾고 이를 통해 전통 윤리를 실천해야 한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존재이므로, 전통 문화가 생활과 연결될 때에 전통 윤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를 실천할 기회도 생기는 것이다.

셋째, 전통 윤리를 현대 사회 구조와 문화에 맞게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삼강 오륜이나 효를 좀더 현대적인 생활 방식과 조화시킴으로써 전통 윤리와 현대 윤리의 조화를 모색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윤리의 실천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넷째, 국가적 차원에서 전통을 보존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전통 건물 및 문화재에 대한 보호 및 보존, 전통 문화 보유자들에 대한 지원을 통해 전통 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

이와 같은 우리의 전통 문화와 전통 윤리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은,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도약하기 위한 지름길이 될 것이다. 전통은 결코 고여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지만, 그 변화는 튼튼한 뿌리에 수많은 가지를 뻗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선조들의 효 사상을 간략히 살펴보자.

효(孝)란 생(生)을 영원히 이어가는 근본이다. 이는 수만 대에 걸쳐 계승되었으므로 인간이 부모를 통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는 어진 마음으로 태어난 생명을 생보의 덕으로 감싸 보살펴 기름으로써, 인(仁)을 실천 생명의 덕을 길러 그 싹이 자라 또한 생명의 싹을 내어 영원토록 이어가니, 생(生)을 통한 덕(德)이 효를 통해 영원에 이른다. 이를 영생의 덕이라 이르며, 전생(轉生)이라 하고, 윤회(輪廻)라 이르며, 부활이라 이른다. 이것이 곧 인(仁)을 이룬 생의 덕이니 의로운 길로 이 생의 덕을 안내해야 한다. 따라서 의(義)란 인(仁)을 이루는 바른 길이니 생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충(忠)은 의(義)요, 의는 인을 이루는 길이니, 곧 효이다. 효를 이루기 위해서는 충실해야 되고, 몸을 닦아야 되는 것이며, 몸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충(忠)을 이루기 위해서는 화기(和氣)(화사한 기운)해야 되고, 화(和)한 마음으로 조화의 덕(德)을 실천해야 되니, 화덕(和德)(화사한 덕기)인 예(禮)가 생명이다. 그러므로 충(忠)의 덕(德)이 실천되어야 효의 덕이 이룩된다. 때문에 효는 인(仁)으로 실천되고, 인(仁)은 의(義)인 충(忠)으로 실천되며, 충(忠)은 조화의 덕인 예(禮)로 실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예(禮)란 너와 나의 관계이니 엄연한 법도(法道)이다. 서로의 입장을 현명하게 판단하고, 어떻게 하면 조화의 덕을 이룩하면서 원만하게 편한 마음으로 복(福)된 덕(德)을 이룰까 생각하며, 도우고 협력하는 슬기이니, 곧 지혜의 덕(德)으로 지(知)인 것이다. 때문에 예(禮)는 지혜로 실천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니,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은 예도(禮道)의 덕(德)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며, 지혜란 예덕(禮德)(예의 바른것)을 이루기 위한 필요의 덕(德)이니, 슬기의 덕을 통하여 조화로운 삶을 이루고, 조화로운 삶을 통하여 의로운 인생을 사니, 생(生)의 본(本)인 인(仁)이 이룩되고, 인(仁)을 이룩한 즉, 효가 생명의 덕으로 영원에 이른다. 그러나 효의 덕이 실천되기 위해서는 인덕(仁德)(인자한 것)으로 신뢰되어야 하고, 의덕(義德)(의기있는 것)으로 신임되며, 예덕(禮德)으로 화합해야 하고, 지덕(智德)(지혜로운 것)으로 분별되어야 하니,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사덕(四德)은 모두 한결같은 믿음으로 인심에서 촌음도 떨어질 수 없으니, 만일 오차가 있다면 사덕의 도(道)가 파괴된다. 그런 때문에 사덕은 신(信)으로 인연된 것이니 믿음이 없다면 생명의 덕(德)인 효(孝)는 결실될 수 없고, 전생(轉生)될 수 없으며 단절로 인한 파멸일 뿐이니, 근(根)·묘(苗)·화(花)·실(實)의 덕(德)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신덕(信德)으로 인연되어 지혜의 덕으로 선별 선택된 남녀가 동성동본을 피해 혼인하여 예(禮)로 화합하고 의로운 가정을 이루니, 인(仁)의 덕(德)이 실천되므로, 영생의 덕인 효로 그 생명의 덕이 밝고 맑게 유전되어 영원에 이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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