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빈(대전만년고등학교 2학년)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졸업을 앞둔 나는 아무런 의욕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몇 개월 후에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기에 왠지 모를 부담감과 떨림을 가지기도 했었다. 제대로 놀 수 있는 기회도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에 친구들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었다. 책이나 공부는 뒷전이었고 조금씩 친구들과 노는 것도 어느 정도 지루해질 무렵 아주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인도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처음에 인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오만가지의 생각이 다 들었다. 뭔가 위험할 것 같고 불편하고 더러울 것 같다는 부정적인 느낌이 가장 먼저 들었다. 무엇보다 인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카레나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는 것, 휴지를 사용하지 않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 등 널리 알려진 지식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친구가 가자고 했던 여행사가 봉사활동과 자유여행을 겸하기 때문에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갈 수 있다는 점과 지루한 생활의 반복 속에서 특별한 것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인도여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여행사를 동반하기는 했지만 부모님 없이 나와 친구만 떠나는 첫 여행이었기 때문에 그 어떤 여행보다도 설레는 마음이 가득했다. 여행의 날짜가 다가오자 문득 인도에서 자원봉사에 대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인도는 아직까지도 카스트 제도가 남아있는 나라라서 불가촉천민이라는 최하층 계급이 존재한다. 이 계급의 사람들은 영원히 인간다운 존중과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한다. 내가 떠나는 여행에는 반드시 불가촉천민 아이들을 위해 며칠 동안 선생님이 되어 한국어를 교육시키는 봉사활동을 해야만 했다. 나는 항상 집에서 막내였고 친척들 사이에서도 내가 가장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내게는 돌봐야 하는 동생은 없었다. 게다가 아이들을 약간 무서워하는 기질이 있어서 더욱 이 봉사활동 프로그램이 두렵게 느껴졌다.

인도에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10시간의 비행 끝에 델리에 도착했다. 첫 번째 봉사활동부터 어떻게 해야 될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이드께서 아이들이 굉장히 밝고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또 한국어를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들을 알려주셨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우리나라 언어를 가르친다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면서 나름 미묘한 감정들이 뒤섞였다. 아이들은 한국에서 온 우리들을 보자마자 달려와서 안기면서 인사하기 바빴다. 불가촉천민이라는 나의 잘못된 편견과는 달리 아이들은 발고 웃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학교에 교실은 총 4개밖에 되지 않았고 낡은 공책과 고사리 같은 손에 쥐어진 몽당연필로 수업을 듣는 아이들의 모습은 나에게 뭔지 모를 묵직한 느낌을 주었다. 나에게는 좋은 필기구로 편안하고 따뜻하게 때론 시원하게 들을 수 있는 수업이 아이들에게는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셈이다. 부모님들은 모두 일을 하러 나가신 경우가 대다수라 아이들은 여기서 먹고 자고 하면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이 아이들은 불가촉천민 아이들 중 일부에 불과하고 많은 아이들은 교육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은 채 평생 카스트제도의 지배하에 살아야만 한다. 이 아이들을 보면서 가장 처음 느꼈던 것은 나는 이렇게 잘 갖추어진 상태에서 불만족하고 그동안 얼마나 공부를 절실하게 생각하지 않고 살았는가에 대한 반성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처음에는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쓰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쓰고 난 뒤 나의 이름을 묻고는 적어달라고 했다.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이름과 부모님 이름, 친구들의 이름 그리고 나의 이름을 적으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내가 선생님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더욱이 아이들이 처음으로 배우는 외국어가 세계 공통어인 영어가 아니라 우리나라 한글이었다는 점이 나에게는 남다른 자긍심을 가지게 해주었다. 사실 우리가 한글에 대해서 자랑스러워하는 날이 얼마나 될까? 특히나 요즘은 우리의 언어가 각종 매체를 통해서 변질되는 경우가 많아서 한글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뒤늦게야 우리나라의 언어에 대해 자긍심을 가진다는 것이 참 부끄럽기도 했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정성껏 한글을 가르쳐 줄 수 있었다. 알기 쉬운 동요를 직접 불러주자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하나의 노래를 배우면 완벽히 소화하면서 다른 노래를 나에게 알려달라고 재촉했다. 누군가에게 선생님이 되어서 가르쳐준다는 것, 특히 다른 나라 사람에게 우리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전달한다는 것에서 새로운 감회를 느낄 수 있었다.

어렸을 적에 나는 독도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쳤고 받아쓰기 시험을 볼 때마다 한글이 어려워서 한글을 한때 정말 싫어했었던 적도 있었다. 나라를 사랑하고 국위를 선양하는 일은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들이 성공해서 한국을 알리는 것이라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들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인도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값진 교훈도 얻을 수 있었고 내가 우리나라를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아이들에게는 인도어 다음으로 처음 배우는 언어가 한글이 되었고 잘 알지 못하는 나라를 우리나라 봉사자들 덕분에 알 수 있었다.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직접 뉴욕에 가서 발로 뛰면서 “두유 노우 코리아”를 외치고 한식을 알리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우리나라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우리나라의 이름, 언어, 문화를 전파하는 것이 나라 사랑의 가장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인들의 관심과 흥미를 얻었고, 한류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문화까지 전파되고, 김연아 선수의 멋진 연기력으로 전 세계의 피겨 팬들을 열광시켰던 것처럼 아주 거대한 움직임만이 나라의 위상을 드높이고 알리는 것이라는 편견 속에서 벗어나야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곧 나라를 사랑하는 일이고 내가 봉사활동에서 느꼈던 모든 것들과 배운 것들 그리고 내가 봉사활동으로 아이들에게 한글을 알려주었던 일들 모두 나라를 사랑하는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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