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일본의 열네 살짜리 중학생 애티나가 매일같이 공부만 하라고 다그치던 부모님을 얼떨결에 살해하고 말리던 할머니까지 세상을 떠나게 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소년이 법의 심판을 받고 소년원으로 가게 된 마지막 날 그는 면회 온 한 사람에게 “내가 가게 되는 소년원은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라고 물었답니다.

“오전에는 학교처럼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직업선택을 위해 일을 하는 곳이란다.”라고 이야기하니 그 소년은 수심 띈 얼굴로 눈물을 글썽이며 “저는 죄인이잖아요?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제발 공부를 하지 않는 다른 곳으로 보내주세요.”라고 애원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공부를 하다보면 공부를 잘 하는 아이와 못 하는 아이로 갈리어 갈등을 빚고, 공부를 못 하는 아이들은 또 다시 고통과 수치가 따르고, 열등의식에 빠져 지옥과 같은 상황 속에서 해방되고 싶을 것이라고 속절없이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하더라는 것입니다.

1998년 4월 15일자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지는 한국교육을 다룬 특집기사에서, 한국이 장래를 위해서 진정으로 걱정해야 할 일은 금융위기가 아니라 시험 중독에 빠진 한국학생들의 시대착오적인 학습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일본의 모리시마 미치오는 그의 저서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에서 2050년의 일본은 몰락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그가 일본이 몰락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교육과 정신의 황폐에서 오는 정치의 무능과 빈곤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교육으로 인한 정신의 황폐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에서는 교육개혁은 첫째가 고교의 교과목을 될 수 있는 대로 통합하여 극히 소수의 과목에만 합격하면 대학입학이 허가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A레벨 시험에서 3과목만 합격하면 대학입학에 필요한 조건이 갖추어진다고 했고, 둘째로 진학률을 억제해야 하며, 셋째 고학력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한번 생각해 봄직한 현실입니다. 공부를 잘 해야만 사람구실을 하고 인류대학에 진학하여 고급공무원이나 판․검사가 되고 의사가 되어 잘 살고 다른 사람의 존경을 받을 수 있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된 우리의 현실!

사회는 다양한 직업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제각기 자기 일에 기쁨과 즐거움을 가지고 충실하게 일할 수 있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는 것도 인식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나 교사는 아이가 가지고 있는 소질과 적성을 일찍이 발견하여, 그 방면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교과 성적이 뒤떨어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열등의식을 안겨주며 미래 사회의 주역을 담당하게 될 싹을 학창시절 때부터 자르거나 상처를 주는 우를 범하는 교육이 돼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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