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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정치의 실현과 문물 제도의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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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02  13: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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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균택 (전) 대전대 부총장

세종은 안정된 왕권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유교 정치를 실현하였다. 먼저, 궁중 안에 정책 연구 기관으로 집현전(集賢殿)을 두고 집현전 학사를 일반 관리보다 우대하였다. 뒤이어 의정부에서 정책을 심의하는 의정부 서사제로 정치 체제를 바꿔 왕의 권한을 의정부에 많이 넘겨주고, 훌륭한 재상들을 등용하여 정치를 맡기고자 하였다. 그러면서도 인사와 군사에 관한 일은 세종이 직접 처리함으로써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이루었다. 아울러 국가의 행사를 오례에 따라 유교식으로 거행하였으며, 사대부에게도 주자가례의 시행을 장려하여 유교 윤리가 사회 윤리로 자리 잡게 하였다.

세종은 왕도 정치를 내세워 유교적 민본(民本)사상을 실현하려 하였다. 유능한 인재를 널리 발굴하였으며, 청백리 재상을 등용하여 깨끗한 정치를 실현하려 하였다. 세종실록 21년조에 동방단군조선은 제요도당씨인 요임금이 세운 나라라 했고 26년조에는 언문은 본래 예부터 있었던 글자이지 내가 새로 만든 글자가 아니라고 했다.

세종 이후 문종이 일찍 죽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면서 왕권이 크게 약화되었다. 곧, 김종서, 황보인 등 재상에게 정치의 실권이 넘어가자, 수양 대군은 정변을 일으켜 왕위에 올랐다. 세조는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기 위하여 통치 체제를 다시 6조 직계제로 고쳤으며, 자신의 활동을 견제하는 집현전을 없앴다. 그리고 경연도 열지 않았으며, 태종 이후 정치 참여를 제한하였던 종친들을 등용하기도 하였다.

성종은 건국 이후의 문물제도의 정비를 완비하였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의 편찬을 마무리하여 반포함으로써 이후 조선 사회의 기본 통치 방향과 이념을 제시하였다. 이로써 조선 왕조의 통치 체제가 확립되었다. 이어 홍문관을 두어 관원 모두에게 경연관을 겸하게 함으로써 집현전을 계승하였으며, 정승을 비롯한 주요 관리도 다수 경연에 참여할 수 있게 하였다. 이로써 경연이 단순한 왕의 학문 연마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왕과 신하가 함께 모여 정책을 토론하고 심의하는 중요한 자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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