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미(대전광역시 유성구 계룡로 38번길 63)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더니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오늘은 11월 2일 가스검침 아주머니 오시는 날이다.

매달 달력을 넘기면 빨간색으로 동그랗게 표시가 되어 있고 바로 밑에 ‘가스 검침’이라는 글씨가 씌어 있다. 짧지만 깨끗하게 적어놓은 달력의 표시는 나의 가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기도 하다. 매월 2일이면 현관 옆에 부착된 도시가스 사용량 기록표에 한 달 사용량을 기록해 놔야 하는데 쌓여 있는 집안일과 아이들의 뒷바라지에 주부인 나로서는 그때마다 깜빡 잊고 기록을 놓치는 때가 많다. 그래서 아줌마를 귀찮게 하고 초인종을 누르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스에 대한 고마움을 느껴보지 못했고 가스 검침 나오는 아주머니에 대해서도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공기나 햇빛처럼 우리 일상생활에 늘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땐 가족의 소중함을 모르듯 도시가스도 우리가 이사 가는 곳마다 늘 우리 가족과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용량만큼 돈만 주면 맘대로 사용할 수 있는 당연한 것. 그래서 나는 도시가스를 돈으로 바꿀 수 있는 당연한 것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이사를 하게 되면서 그런 나의 생각은 당연함에서 비롯된 무지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얼마 전 바쁘게 이사를 하면서 도시가스에 대한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모든 이삿짐들이 거의 정리가 되어갈 늦은 무렵 우리 식구의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밥을 짓고 간단한 음식을 요리하려 할 때에 비로소 가스가 끊겨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의 당황스러움은 지금 말로도 표현이 되지 않는다. ‘당장 가스가 필요한 시점에 사용할 수가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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