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만재 (전) CBN-TV 회장

세월 가는 게 너무나 무심해 자주 가던 서초동 한 음식점에서 나와 지인들이 모여 서로 얼굴이나 보자며 모임을 하나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매주 수요일에 모여 밥을 같이 먹는다’는 의미로 수요회가 만들어졌다. 구성원은 한 시절 방송이나 신문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장안의 논객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10여명이 모였으나 요즘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3~4명이 고작이다.

우리는 매년 겨울이면 지하철을 타고 온양온천은 물론 국내 이곳저곳 온천을 돌아다녔다.

지난해 겨울에는 일본 남쪽과 북쪽에 있는 온천 지방도 두루 돌아다니고 왔다. 그러던 사람들이 지금은 의사가 ‘이것도 먹지 말라’, ‘저것도 하지 말라’고 하니 반주 한 잔도 못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래도 얼굴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제는 아예 자리 보전하고 누운 사람도 있다.

얼마 전에는 문병을 다녀왔다. 젊은 날 같은 직장에서 일했던 존경하는 선배다. 풍부한 감T수성과 날카로운 직관력으로 명성을 날렸던 분이다. 우리는 하늘을 날고 물 위를 달리는 기상으로 일했기에 땅 위를 걷는 것쯤이야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았다. 그렇게 지냈던 분이 이제 병실 침대에 누워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눈만 깜빡이는 정도다. ‘세월엔 장사가 없다’고 한때 빛나던 재능도 소용이 없구나라고 생각하니 슬픈 마음이 든다.

우리네 인생은 그 누구든 ‘피할 수 없는 곳’을 향해 가기 마련이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보다 ‘어떻게 살았는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현실과 적당하게 타협하지 않고 정도를 걸으며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산다는 게 무엇일까. 좋아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산책도 하는 삶이 행복 아닌가. 지금 실감하고 있듯 건강하면 이 세상 다 가진 것이나 다름없다. 건강을 잃으면 무엇이 남는가. 모두 다 잃는 것과 같다. 아침에 자리에서 눈뜨고 일어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은퇴한 ‘올드보이’를 일본판에서는 비 온 뒤 구두 뒤창에 찰싹 달라붙은 젖은 낙엽에 비유해 ‘누레오치바’라고 한다. 요즘 나는 눈이 침침해 돋보기에 의지하는데 글을 쓰고 책 보기가 힘이 든다. 허리는 물론 어깨, 무릎 등 몸 구석구석이 다 아프다. 몸이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다. 이렇게 갑자기 몸이 좋지 않을 줄이야.

오늘날 이 시대를 ‘죽은 지식인의 사회’라고 하지 않던가. ‘어른이 없는 사회’, ‘존경할 대상이 없는 나라’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지식인이라면 공공의 이익을 위해 비전을 제시하며, 건전한 사회 발전을 위해 비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런 삶을 살았는지, 얼마나 노력을 쏟았는지 돌아보면 아쉬움과 회한이 적지 않다.

외롭고 쓸쓸한 노년이 되면서 막막하고 허망해 ‘좀 더 살아야 하나’ 아니면 ‘이제 그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파도처럼 번갈아 몰려온다.

우리가 늙어가는 것은 조금씩 조금씩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게 아니던가. 인생무상이다. 그러나 내게 찾아온 이 아침이 희망을 가져다주는 소중한 날임을 감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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