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의 관리는 주로 과거와 음서, 천거를 통하여 선발되었다. 과거에는 문관을 뽑는 문과와 무관을 뽑는 무과, 기술관을 뽑는 잡과가 있었다. 문과는, 3년마다 실시하는 정기 시험인 식년시와 부정기 시험인 증광시, 알성시 등이 있었다. 문과는 식년시의 경우에는 초시에서 각 도의 인구 비례로 뽑고, 2차 시험인 복시에서 33명을 선발한 다음, 왕 앞에서 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군역(軍役)제도를 정비하고 군사 조직을 강화하였다. 태종 이후 사병을 모두 폐지하고, 16세 이상 60세 이하의 모든 양인 남자는 군역을 지게 하였다. 이로써 모든 양인은 현역 군인인 정군과 정군의 비용을 부담하는 보인(봉족)으로 편성되었다. 다만, 현직 관료와 학생, 향리 등은 군역을 면제받았으나, 종친과 외척, 공신이나 고급 관료의
조선의 중앙 정치 체제는 경국대전으로 법제화되었다. 관리는 문반과 무반의 양반으로 구성되었고, 30등급(18품 30계)으로 나뉘었다. 조선 시대의 관직은 중앙 관직인 경관직과 지방 관직인 외관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경관직은 국정을 총괄하는 의정부와 그 아래에 왕의 명령을 집행하는 행정 기관인 6조를 중심으로 편성되었다.6조 아래에는 여러 관청이 소속되어
세종은 안정된 왕권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유교 정치를 실현하였다. 먼저, 궁중 안에 정책 연구 기관으로 집현전(集賢殿)을 두고 집현전 학사를 일반 관리보다 우대하였다. 뒤이어 의정부에서 정책을 심의하는 의정부 서사제로 정치 체제를 바꿔 왕의 권한을 의정부에 많이 넘겨주고, 훌륭한 재상들을 등용하여 정치를 맡기고자 하였다. 그러면서도 인사와 군사에 관한 일은
이성계는 고려조선 공민천자로부터 천자옥새를 빼앗아 강남지나(江南支那) 반란도적 수장인 주원장에게 넘겨주었고, 도적이 고려조선 삼만리 강토의 천자가 되었다. 이 때 명 주원장으로부터 간도인 대련반도와 한반도, 일본열도까지 통치권을 위탁 받고 주원장 도적의 가신으로 제후왕을 봉작 받으니 유명이씨조선(有名李氏朝鮮) 제후왕으로 개성 수창궁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왕
맹자는 ‘사람이 어려서는 부모를 사모하다가 사춘기에 들어 남녀가 사랑을 느끼게 되면 젊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가 아내나 자식을 두면 처자만 사랑하게 되고, 벼슬길에 오르게 되면 임금을 사모한다. 큰 효도란 종신토록 부모를 사모하는 것이니, 나이 오십이 되어도 부모 사모하는 마음이 변치 않은 분은 순임금에게서 보았노라.’ 하였다.이와 같으니 성인은
동이주류 한민족(韓民族)의 효사상은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동이주류 하(夏), 은(殷), 기자조선을 거치면서 숱한 효행을 엿볼 수 있으나, 특히 신라조선 때 손순(孫順)과 고려조선 때 최누백, 조선조 때의 자강, 석진, 은보 등은 생전의 효도와 노후 봉양과 치병구약(治病救藥)으로 효도했고, 사후의 효도로 오로지 모정(慕情)의 지극한 발로로서 부모의 죽음
충효의 개념은 한인천제(桓因天帝)로부터 요 단군왕검으로 이어진 홍익인간 사상은 뿌리 깊게 전통으로 계승된 것으로서, 이 사상은 조의선인과 화랑사상에 연결되었다. 또한 그것은 동이천자 기자조선 삼한시대의 도맥(道脈)인 공자의 유도(儒道)사상으로부터 기자연조선(箕子燕朝鮮)과 동이주류 천자나라 대부여조선(大夫餘朝鮮)을 거쳐 동이주류 천자나라 고구려조선에서 동이주
오늘날 종교(宗敎) 신앙(信仰)을 구별 못하는 세상이 왔다. 이는 종통도맥(宗通道脈)인 역사를 모르기 때문이다. 역사를 모르면 부모조상을 모르는 금수와 같다. 역사는 과거지만 미래학(未來學)이다. 역사거울속에 비쳐진 현재 모습을 깨달아야 미래를 열수 있다. 역사 모르면 한치 미래를 열수없는 소경이며 과학발명도 역사서 가르쳐 준 결실이니 도통삼신종통(道通三神
신앙이란 인간들이 각자 믿는 대상(對象)에 따라 자연(自然)또는 초자연(超自然)적인 정령신(精靈神)을 자유(自由)롭게 믿(信)는 것을 말하는데, 소, 돼지, 고목, 바위, 북두칠성, 하천, 산, 하늘, 땅, 별, 인간(人間) 등을 말하니 신앙(信仰)은 만인의 자유(萬人自由)이다.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에는 “성야(誠也), 신야(信也), 종인언야(從人言也)라”
종교란 삼신 삼원(三神,三元:天,地,人), 천조봉제사(天祖奉祭祀) 생맥(生脈)으로 인(仁)의 성맥(聖脈)인 도맥교(道脈敎), 정맥교(政脈敎), 학맥교(學脈敎)이며, 삼신조종(三神祖宗)의 교화지덕(敎化之德)을 총칭(總稱)하는 종주교맥(宗主敎脈)을 종교(宗敎)라 하며, 이를 믿고 우러러 억만대자손(億萬代子孫)이 숭앙(崇仰), 치성(致誠), 삼신천조(三神天祖)의
김부식(金富軾)국사교재편찬회가 펴낸 신고한국사에서 ‘김부식은 고려인종(仁宗:17대 1123-1146년)때 묘청(妙淸)의 서경천도(西京遷都)와 금국정벌론(金國征伐論)에 반대했고, 1135년에 묘청반군(妙淸反軍)진압, 서경정토대장(西京征討大將)으로 출정하여 다음해에 평정했다.’라고 나오는데 여기서 개경(開京)인 송도(松都)는 한반도의 서쪽 끝이다. 그렇다면 서
구산선문(九山禪門)에서 구산(九山)은 ① 회계(會稽) ② 태산(泰山) ③ 왕옥(王屋) ④ 수산(首山) ⑤ 태화(太華) ⑥ 기산(岐山) ⑦ 태행(太行) ⑧ 양장(羊腸) ⑨ 맹문(孟門)이다.국사교재편찬회가 펴낸 신고한국사에서 ‘고려는 천태종(天台宗)이 대각국사(大覺國師)에 의해 개종(開宗)된 후 구산선문(九山禪門)은 조계종(曹溪宗)으로 총칭하였다. 대각국사의
국사교재편찬회가 펴낸 신고한국사에서 ‘고종(高宗) 19년 (1232) 성중에 방을 붙여 강력히 이거(移去)를 종용하고 제도(諸道)의 백성들에게 산성(山城)과 해도(海島)로 피난을 명령하였다. 강화천도(江華遷都)는 바다를 두려워하는 몽고군의 약점을 이용한 것이며, 몽고 측에 적의를 보임과 동시에 장기 항쟁의 각오를 표시한 것이었다. 그곳에 궁궐을 지어 강도(
① 함주(咸州)는 지금 봉천개원현(奉天開原縣)인데 요녕성(遼寧省) 개원현(開原縣)을 말한다. ② 영주(英州)는 광동성(廣東省) 영덕현(英德縣) 동쪽을 말한다. ③ 웅주(雄州)는 직예성(直隸省) 웅현(雄縣)이다.④ 길주(吉州)는 강서성(江西省) 길안현(吉安縣)이다.⑤ 복주(福州)는 민주(閩州) 풍주(豊州) 천주(泉州)라 이름하였다. 지금 복건성(
신고한국사에는 고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고려의 지방관제는 변경이 잦았다. 개성부(開城府)(개성도내(開城都內)의 행정과 6적현(六赤縣) 및 6기현(六畿縣)을 통치함을 제외하고는 전국을 10도로 행정구역을 구분하였으나, 도의 지역도 변동이 수차 있었으며 지방관(地方官) 관호(官號)의 변천도 심하여 그 갈래를 잡기 어려우나, 그 대강은 다음과 같다.
발해(渤海 : 699-926)는 고구려천자조선유장 대조영(大祚榮)이 창건했는데 발해는 통일신라천자조선봉방으로 숙신씨 후예이며 예맥의 일파이다.. 통일신라와 발해가 고려천자조선으로 통일계승되면서 중앙아시아 외몽고에서 발해를 계승한 고려천자조선봉방글안요(遼)와 이를 계승한 여진인 금(金)과 이를 계승한 몽고인 원(元)으로 다음에서 고려천자조선과의 관계를 설명하
3) 홍익오정(弘益五精)행(行)① 화신제삼회일(火神祭三回日)② 수신제사회일(水神祭四回日)③ 목신제오회일(木神祭五回日)④ 금신제육회일(金神祭六回日)⑤ 토신제칠회일(土神祭七回日)이라 하며 오행치수(五行治水)로 농경사회의 청치이념의 실현인 것이다.단군세기(壇君世紀)에 이르되, 삼칠일을 정해진 날로 하여 모든 사람이 모여 계(戒)를 지켰고, 이로부터 조정에는 종훈
1) 홍익육덕(弘益六德)과 양생칠목(養生七目)요 단군조선은 신불국(神巿國), 유소(有巢) 한웅천황(桓雄天皇)의 용백나라(龍伯那羅) 뒤 이은 청구배달(靑丘倍達)나라의 후예이다. 홍익육덕(큰 여섯 가지 덕목)으로 ⓛ 부모가경(父母可敬) ② 처자가보(妻子可保) ③ 형제가애(兄弟可愛) ④ 노장가륭(老長可隆) ⑤ 소약은혜(少弱恩惠) ⑥ 백성신의(百姓信義
천산(天山)문명은 세계의 지붕인 천산산맥을 중심으로 삼위태백(三危太伯) 흑수곤륜(黑水昆侖)에 이르는 요동(遼東)으로, 동이(東夷) 한인천황(桓因天皇)의 한국(桓國)과 한웅신불국(桓雄神巿國)에서 청구국(靑邱國)으로 연결되고, 배달동이조선(倍達東夷朝鮮)인 숙신국(肅愼國) 맥국(貊國)으로 되어 있으며, 한편으로는 천산곤륜(天山昆侖)을 중심으로 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