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訓民正音) 서문(序文)의 중국(中國)은 국호(國號)가 아니며 한문(漢文)은 한문(韓文)이다

「국지어음이호중국여문자불상유통」에서 “나라의 「뜻」 글과 「소리」 글자가 나라 가운데서 다르게 표음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이 어문인 뜻글자인 표의문자와 음문인 소리글자인 표음문자가 유통하나 표음이 표의의 뜻을 바르게 소리내지 못하고 사람마다 같지 아니하다.”

여기서 「어․음」이란 「뜻」과 「소리」가 「이호」다르다는 뜻이다. 이것이 나라 가운데서 다르게 「표의」문자를 사람마다 틀리게 「표음」된다는 것이며, 또 「문자」란 「표의문자」와 「표음문자」로 된 것이다. 때문에 이것들이 유통되나 표의문자를 표음하는데 서로 같지 않다는 뜻이다.

세종 당시 주의 표시가 그렇게 되었던 것인지 그 후대에 일제의 손에 또는 모화사학에서 표시한 주인지에 대하여는 알 수 없으나 「황제적사용문자」란 표현에는 문자의 발전과정을 모른 표현이다.

대변경에 「복희출어신불」 “복희 「B.C. 3512년」씨는 신불배달 나라에서 출생했다” 또 산해경에는 「복희출어용백국」 “복희씨는 용백에서 출생했다. 등에서 복희씨는 곤륜 적석에서 하수 「황하수」가 출수한 하수에서 결승으로 하도를 집대성하고 연산으로 작역한 성인으로 동이신불 청구 배달나라의 조상이며 만세문자의 조상이 되었다.

후에 신불에서 염제신농씨「B.C. 3071년」가 낙수인 옹주에서 낙서를 집대성하였는데 이것이 도문이며 귀장으로 작역하니 그 후에 황제(B.C. 2679)가 일어나 또 낙서를 발전시켰고 이것이 후에 단군조선 「평양: 기주: 아사달」이래 하․상․은대로 이어지고 은허에서 1899년에 발견된 갑골문은 원시한문의 모체이며 동이족이 갑골 한문인 표의 문자를 창안하여 사용하였는데 이것이 북방동이계인 기자주조선때 죽서문 또는 방책문자를 거쳐 부여․고구려․백제․한․신라때 녹피문으로 표의문자가 발전했으며 이후 금속문자로 발전했고 동이지류 남방 강수지나 계에 전래되어 동이지류 지나문화를 창건하게 되었다.

갑골한문은 요 단군조선때에 표음문자인 구결식 가림다토 삼십팔자로 형음 구음으로 소리내어 발음했던 것이 신라 때까지 이어졌는데 설총이 이두로 두음과 중음 말음으로 복잡했던 표음을 구결식으로 정교하게 발전시켜 이두로 통일 고려 조선조 세종때에 이르러 가림다토 38음 중 표음이 어려운 10음을 빼고 28음만 가려뽑아 구결식 표음을 훈민하는 정음으로 정교하게 다듬어 1948년 전후까지 사용되었으나 그 이후 한글전용 어용논자들에 의해 구결식 훈민정음인 두음 중음을 삭제, 말음으로 구음된 것을 표음으로 통일발음하게 됨으로써 표음문자를 한글인 한음이라 하는데 한글이란 이두식 표의 표음과 다르게 표음만할 뿐이다.

따라서 갑골한문자는 본시 표의문자이고 요단군왕검때 집대성한 구결식 음문인 가림다토인 한글은 표음문자이다. 그래서 「국지어」는 「뜻」글자인 「표의문자」이고 「국지음」은 「소리」글자인 표음문자란 뜻이며 중국이란 국중의 뜻이므로 「나라가운데」란 뜻이다. 만일 명국인 국호로 해석할 경우에는 「명국지문자」라 표현했을 것이다. 즉 「이어명국지문자」라 표현해야 마땅하다. 이때는 명나라 때이니까 또 「여문자」란 「어문」인 표의문자란 뜻이고 「음문」인 표음문자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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