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부터 우리 한민족은 수평선위로 보이는 대마도(두섬)에 들어가 우리 문화의 씨를 뿌렸다.

지금도 청명한 날씨면 눈 밝은 사람이면 누구나 대마도(두섬)에서 모락모락 오르는 연기를 볼 수 있다. 바로 우리 민족이 예부터 아침, 저녁으로 밥을 짓는 굴뚝에서 솟아 나오는 연기인 것이다.

손짓하면 손을 흔들어 줄 듯, 소리치면 대답을 해 줄 듯 보이는 섬, 두 개의 섬으로 보이는 섬이라 해서 한국인들은 예로부터 대마도를 두섬이라고 불러 왔다.

우리의 섬 대마도(두섬)는 고고학적으로 칠천년 전부터 우리 한민족이 한반도에서 대마도(두섬)로 건너가 살기 시작한 것이 정설(定說)로 되어 있었으나, 1978년 7월 일본의 뱃부(別庭)대학 고고학 팀이 대마도(두섬)의 오자끼(尾崎) 유적지에서 발굴한 오백여점의 토기(土器) 파편을 분석한 결과 모든 토기들이 구천년 전에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세융기문(細隆器文)과 침선문(沈線文) 토기임을 확인한 것은 또한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계가 놀랄 사실이었다.

그간의 칠천년 설이 구천년 설로 완전히 바뀌어 구천년 전부터 우리 한반도의 한민족이 토기를 만들어 오자끼(尾崎)에 들어가 생활한 흔적이 유적으로 발견된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국가의 주권이나 영토가 구분되지 않았을 태고 적에는 가서 살면 그곳이 내 땅이요, 내 고향이 되었을 것이니 아세안 대륙에서 거대한 세력과 문화를 가졌던 동방족인 우리 한민족이 한반도 남단까지 내려가 한 사람 한 사람씩, 때로는 무리를 지어 대마도(두섬)로 건너가 부락과 부락을 이루어 산야를 개간하고 수렵하며 살았던 것이 확인된 것은 또 하나의 쾌거였다.

그뿐만 아니라 대마도로 건너가 정착한 우리 한민족은 구주(九州)로, 사국(四國)으로, 본주(本州)로 까지 퍼져 건너가 살면서 군림하며 생활하였던 것이다.

저명한 역사학자 文定昌氏는 현해탄내 산재하는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국가 형태로 조직된 국가들과 구주 북연해(北沿海) 섬들의 국가를 통틀어 일종의 연합국가를 세우니 이것이 바로 임나국(任那國)이었고 임나 연합국의 중심이 바로 대마도(두섬)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이 대마도(두섬)는 우리 한민족이 건너가 꽃을 피웠던 우리 대한민국의 영토인 것이다.

일본의 사이비 역사학자 스에마쯔(末松保和: 경성제국대학 교수, 문학박사)가 그의 저서 '임나흥망사(任那興亡史)'라는 책에서 군국일본(軍國日本)의 조선 반도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고대부터 한반도 남부에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라는 것이 있어서 한반도 남부를 경영했다’고 거짓말을 늘어 놓았다.

그러면서 末松은 이 책을 외국말로 번역하여 외국에까지 출판하여 보급하는 작태를 보였으니, 이것이 바로 지금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일본인 고유의 잘못된 논리로, 역사를 왜곡하여 조작을 하는 근성인 것이다.

末松이 주장하는 야마도(倭) 정권이 강력한 정부와 군대를 가졌어야 할 그 당시 4세기에는 왜(倭) 지는 나라다운 나라도 없었으며 정권도 없었고, 군대도 없었고, 야만인들만이 사는 황무지였던 것을 일본의 사이비 역사학자 「스에마쯔」는 어찌 모른단 말인가?

지나(支那)의 역사고서 「二十五史」에도 백제가 지나의 동부(현재의 북경에서 상해에 이르는 지명)를 400년간이나 점령하여 식민지를 삼았다는 기록이 있거늘 이 권위 있는 역사고서도 부정할 것인가?

일본은 지금이라도 모든 과거를 인정하고 독도에 대한 야망을 버리고, 위안부의 역사를 인정하여 사과하고 대마도(두섬)를 우리 대한민국에 반환하여 대마도(두섬)에서 통곡을 하고 있는 우리 한민족의 한을 풀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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