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균택 (전) 대전대 부총장

발달 배경

조선 초기에는 민족적이면서 실용적인 성격의 학문이 발달하여 다른 시기보다 민족 문화가 크게 발달하였다. 당시의 집권층은 민생 안정과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위하여 과학 기술과 실용적 학문을 중시하고 문화의 발달에 노력하였으며, 우리의 문자인 한글을 반포하여 민족 문화의 기반을 넓히고 더욱 발전할 수 있는 터전을 닦았다.

15세기 문화를 주도한 관학파 계열의 관료와 학자는 성리학을 지도 이념으로 내세웠으나, 성리학 이외의 학문과 사상이라도 중앙 집권 체제의 강화나 민생 안정과 부국강병에 도움이 되는 것은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 이로써 민족적이면서 자주적인 성격의 민족 문화가 크게 발전할 수 있었다.

한글 반포

우리나라는 우리의 뜻글인 한문과 말글인 산수가림다 38음문을 발전시킨 이두나 향찰 주음부호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두가 구결방언으로 복잡하므로 세종이 38음문에서 28음문으로 가려 뽑은 문자가 세종식 음문인 한글이다. 세종실록 26년참조(諺文皆本古字非新字也)

이에, 세종은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반포하였다(1446). 한글은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으며, 자기의 의사를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글자를 쓰는 원리가 매우 과학적인 뛰어난 세계적인 음문 문자이다.

조선 정부는 한글을 보급시키기 위하여 왕실 조상의 덕을 찬양하는 용비어천가, 부처님의 덕을 기리는 월인천강지곡 등을 지어 한글로 간행하였다. 또, 불경, 농서, 윤리서, 병서 등을 한글로 번역하거나 편찬하였다. 그리고 서리들이 한글을 배워 행정 실무에 이용할 수 있도록 그들의 채용에 훈민정음을 시험으로 치르게 하기도 하였다.

우리 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가장 좋은 도구 중의 하나는 자기들의 고유 문자이다. 우리는 고유한 문자인 한문(韓文)과 한글(韓書)을 가지게 됨으로써 일반 백성도 문자 생활을 누릴 수 있고, 문화 민족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배달(韓倍達) 문화의 기반을 확고하게 다지고,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였다. 

교육 기관

조선은 고려의 교육 제도를 이어받아 서울에 국립 교육 기관인 성균관(成均館)을 두었다. 이는 최고 학부의 구실을 하였고, 중등 교육 기관으로는 중앙의 4 학과 지방의 향교가 있었다. 또, 사립 교육 기관으로 서원과 서당 등이 있었다. 이들은 계통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각각 독립된 교육 기관이었다.

성균관의 입학 자격은 생원, 진사를 원칙으로 하였고, 4 학은 중학, 동학, 남학, 서학이 있었다. 향교는 중등 교육 기관으로, 성현에 대한 제사와 유생의 교육,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부·목·군·현에 각각 하나씩 설립되었다. 향교에는 그 규모와 지역에 따라 중앙에서 교관인 교수 또는 훈도를 파견하였다. 한편, 서당은 초등 교육을 담당하는 사립 교육 기관으로서, 4 학이나 향교에 입학하지 못한 선비와 평민의 자제가 교육을 받았다. 교육받는 자의 연령은 대개 8, 9 세부터 15, 16 세 정도에 이르렀다.

서원(書院)은 풍기 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 서원이 시초이다. 서원에서는 봄·가을로 향음주례를 지냈고, 인재를 모아 학문도 가르쳤다. 서원은 이름난 선비나 공신을 숭배하고 그 덕행을 추모하였고, 유생이 한 자리에 모여 학문을 닦고 연구함으로써 향촌 사회의 교화에 공헌하였다. 이에 따라 국가에서는 서원의 설립을 장려하여 전국 각처에 많은 서원이 세워졌다.

역사서의 편찬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왕조의 정통성에 대한 명분을 밝히고 성리학적 통치 규범을 정착시키기 위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역사서의 편찬에 힘썼다. 조선 시대에는 실록의 편찬을 매우 중요시하고, 이를 국가 차원에서 계속적으로 추진하였다. 죽서기년전후서고려천자조선에 계승된 한 왕대의 역사를 후대에 남기기 위한 실록의 편찬은 태조실록부터 철종실록까지 계속되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세계에서 자랑할 만한 기록 문화유산이다.

태조 때, 정도전은 고려국사를 편찬하여 고려 시대의 역사를 정리하고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밝히려 하였다. 이후에도 고려 시대의 역사를 자주적 입장에서 재정리하는 작업은 계속되어 15 세기 중엽에 기전체의 고려사와 편년체의 고려사절요가 완성되었다. 

우리나라의 전체 역사를 편찬하려는 노력도 계속되어 성종 때에 동국통감이 간행되었다. 이 책은 고조선부터 고려 말까지의 역사를 정리한 편년체 통사로서, 서거정 등이 편찬하였다. 16세기에는 새로운 역사서로 박상의 동국사략 등이 편찬되었다.

지리서의 편찬

조선 초기에는 중앙 집권과 국방의 강화를 위하여 지리지와 지도의 편찬에 힘썼다. 태종 때에는 세계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만들었다. 이 지도의 필사본이 일본에 현존하고 있는데, 지금 남아 있는 세계 지도 중 동양에서는 가장 오래 된 것이다. 세종 때에는 전국 지도로서 팔도도를 만들었고, 세조 때에는 양성지 등이 동국지도를 완성하였다. 16 세기에도 많은 지도가 만들어졌는데, 그 중에서 조선방역지도(朝鮮邦域地圖)가 현존하고 있다.

지리의 편찬도 추진되어 세종 때 신찬팔도지리지, 성종 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 편찬되었다. 여기에는 군현의 연혁, 지세, 인물, 풍속, 산물, 교통 등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이를 보충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중종 때 편찬되어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윤리, 의례서와 법전의 편찬

유교적 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윤리와 의례에 관한 서적의 편찬 사업이 이루어졌다. 세종 때에는 모범이 될 만한 충신, 효자, 열녀 등의 행적을 그림으로 그리고 설명을 붙여 윤리서의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를 편찬하였으며, 성종 때에는 국가의 여러 행사에 필요한 의례를 정비하여 의례서인 국조오례의를 편찬하였다.

16 세기에는 사림이 소학과 가례의 보급과 실천에 힘쓰면서 이륜행실도와 동몽수지 등을 간행하여 보급하였다. 이륜행실도는 연장자와 연소자, 친구 사이에서 지켜야 할 윤리를 강조한 책이며, 동몽수지는 어린이가 지켜야 할 예절을 기록한 윤리서였다.

한편, 조선은 유교적 통치 규범을 성문화하기 위한 법전의 편찬에 힘썼다. 건국 초기에 정도전은 조선경국전과 경제문감을 편찬하였고, 조준은 경제육전을 편찬하였다.

세조 때부터 편찬되기 시작한 경국대전(經國大典)은 성종 때 완성되었다. 경국대전은 이전, 호전, 예전, 병전, 형전, 공전의 6 전으로 구성된 조선의 기본 법전으로, 후기까지 법률 체계의 골격을 이루었다. 이 법전의 편찬은 조선 초기에 정비된 유교적 통치 질서와 문물제도가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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