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는 자녀들을 사랑으로 키우시고 자녀들은 어버이에게 효도한다. 즉 어버이의 사랑의 단비를 맞고 자녀들은 그 효심의 싹을 틔워 자라가는 모습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시경(詩經)에 ‘어버이(親)께서 나를 낳으시고, 어버이(親)께서 나를 길러주셨으니, 그 노고하심이 진실로 얼마나 크시랴. 태산보다도 더 높고 바다보다도 더 깊으시며 하늘보다도 더 넓고 높으시다. 그 은혜를 갚고자 하나 이미 부모 계시지 않으시니 오호라 하늘 끝에 이르는 슬픔이여’ 라고 하였다.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님의 은혜는 생(生)을 주신 그 하나만으로 족한 것이다. 그 하나만으로도 은혜는 갚을 길이 없는 것이다. 우리를 키우시며 입히고 가르치시는 것은 부대적(附帶的)으로 하시는 일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왜 우리는 남만 못한가? 못 가르치고 못 입힐 바에, 왜 낳았는가? 는 말을 한다면 이는 은혜를 모르는 금수(禽獸)이다.

부자자효(父慈子孝)의 참 뜻은 생(生)을 주신 은혜는 그만두고 기르시는 과정에서 부모님의 도리로 자녀를 사랑으로 키우시는 바이며 그 어버이의 사랑의 단비를 맞으며 자녀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사람의 정이 서로 보태어 가는 관계이다. 인간과 인간이라는 대등한 상황에서가 아니라 인정(人情)과 인정(人情)이란 정리(情理)의 평형(平衡)을 말한다. 받는 정(情), 주는 정(情)이요 낳은 정(情), 기른 정(情)에 보은하며 효친애경(孝親愛敬)(부모에 효도하고 공경함)으로 부자평정(父子平情)(부자간의 공평한 정의)하니 이는 부모의 도리요, 자녀의 도리이다. 그러므로 ‘부모님의 허물은 자녀들이 숨기고 자녀들의 허물은 부모님들께서 숨겨주신다.’ 이 도리 또한 쌍무적(雙務的)이며 평형(平衡)의 도리요, 조화의 덕인 것이다. 여기서 부모가 낳아서 자녀가 장성하기까지의 숱한 인생의 나날이 다 어찌 좋은 것만 있겠는가?

부모 역시 완전한 성인이 아니다. 하물며 자식들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이에서 특히 고부간(姑婦間)의 문제는 고금에 이르기까지 문제가 많은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도리를 지켜야 할 귀한 덕목이다. 또 경(經)에 이르되 ‘내 몸은 몸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니 감히 어찌 상하게 할까 보냐. 이를 잘 보전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니 이것이 효의 시작이요, 입신양명 출세하여 부모님과 조상님을 영광되게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니 이것이 효의 마지막이라.’ 하였다.

여기서 자기 몸을 상하게 한다든가 병을 앓는다던지 죄인의 몸이 된다든가 자살한다든가 하는 것들은 부모에 불효한 것이니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부자가 된다거나 높은 자리에 오른다거나 하는 출세도 어찌 보면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나 결국 부모에 효도하는 자식의 도리이다.

오늘날 변칙 출세, 모략중상 등으로 렵관출세(獵官出世) 등은 있을 수 없지만, 있다면 이 역시 부모 조상을 욕되게 하는 막대한 불효이다. 그러므로 효(孝)와 충(忠)은 하나의 근본인 것이다.

예부터 ‘효자(孝子) 열녀(烈女)의 가통(家統)이 있는 집안에서 사람을 뽑아 신하(臣下)로 써야 한다.’ 하였다. 이는 충(忠)의 근본이 효이기 때문이며 효자와 열녀는 영세불멸(永世不滅)의 정려문(旌閭門)을 세워 천추(千秋)에 그 행덕(行德)을 기렸던 것이고, 그 자손들을 등용하여 벼슬을 주고 중히 썼던 것이다. 오늘날 부모는 자녀를 엄하게 교육시켜 길러내야 하고 자녀는 마땅히 부모님께 효도해야 할 것이다. 옛부터 ‘엄한 아버지는 효자를 낳고 엄한 어머니는 효녀를 낳는다.’ 하였다.

요즈음 부모들은 너무 버릇없이 자녀교육을 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내 눈에 든 자식, 남의 눈에 안 든다.」는 속담이 있다. 또한 부모들 역시 자녀들의 본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본디 없는 놈이란 말이 있으니 자녀가 부모로부터 보고, 배운 바가 없다는 무서운 말이다.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하며’, ‘어머니는 어머니다워야 하고 딸은 딸다워야 한다’는 진리이다. 그러할 때 자녀는 마땅히 부모에 효도할 것으로 본다. 이는 인(仁) 덕목(德目)의 첫째이다. 또 ‘부자 사이란 본래 하늘로부터 맺어진 친함’인 것이다. 그러므로 생을 주신 부모는 주(主)이고, 생을 받은 자녀는 종(從)이다. 부모의 정과 자녀의 정은 인정과 인정의 만남이다. 즉 인생의 만남이다. 그러므로 인정의 평등한 모습이다. 그러나 생자부모(生子父母)의 관계는 윤서(倫序)의 관계이다. 

부모님을 섬기고 자녀가 순종하는 것은 만고불변의 인륜대도(人倫大道)이며, 인(仁)의 극치이다. 인격과 인정은 다르다. 인정은 부자간의 인정 자체이고 인격은 부격(父格)과 자격(子格)이 다르다. 부(父)는 아버지라는 위치이고 자(子)는 아들이란 위치이다. 부(父)라는 명칭과 자(子)라는 명칭은 전혀 별개의 개념인 동시에 차별적인 위치로 평등할 수 없다. 그 자체가 만고에 지켜질 때 조화가 이룩되며 평화가 달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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