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균택 (전) 대전대 부총장

유소(有巢 : BC3898)씨는 이전 100여대가 지나 삼황(三皇) 중 최초로 역사 속에 등장하였는데, 때는 결승(結繩)시대이다. 그는 오색의 빛을 발하였고, 긴 팔을 가졌으므로 이름 하여 유소라 하였다. 유소의 뒤를 이어 수인씨가 유소씨의 후예로 천하를 다스렸으니 유소의 후계자라 하였고, 장자 선성편(繕性篇)에는 복희씨의 앞에 천하를 다스린 왕이 수인씨라 하였다. 그러므로 삼황은 유소씨, 수인씨, 복희씨이다.

유소씨 시대는 히마랍아산(喜馬拉雅山) 장성(長城) 및 탑리목(塔里木 분지(盆地)에서 삼림왕국(森林王國)을 이룩했던 수천 년의 세월을 지나온 때였다. 천산곤륜(天山昆侖)을 중심으로 한, 반경이 약 800리의 곤륜구(昆侖邱)인 타림목 분지는 인류문명의 시원지(始源地)로 추정되며 반고한인씨(盤古桓因氏)의 이전원(伊甸園)은 곧 에덴동산(口東山)으로서(“口”에덴담 “東”동녁동 “山”뫼산, 口에덴 동쪽의 산이다.) 에덴(eden:사람) 또는 에담(edam:사람)을 지칭한 것으로, 에덴동산의 한님(하나님)인 해와로 전음(바꾸어진 것)된 것으로 본다.

구약 창세기에 사대 강원(江原)이 바로 이곳으로 ①하수(河水) ②강수(江水) ③적수(赤水) ④흑수(黑水)가 된다. 또 금, 은, 주옥(珠玉)이며 황보석(黃寶石), 청보석(靑寶石) 등의 갖가지 보석들은 이곳을 상징한 것으로 이 시기는 자연물 채취시대를 지나 목축과 어로시대로, 타제석기(打製石器)와 병목기(並木器)시대에서 마제석기(磨製石器)와 병목기(並木器) 결승시대(結繩時代)로 이어져 수리(數理)개념을 파악할 수 있었던 문명시대이다.

반고한인(盤古桓因)(태초 나라를 세운 사람)의 성인(聖人)문명 창도(創道)시대의 개천(開天), 개벽(開闢)기를 지나 성인 유소한웅천왕(有巢桓雄天王)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공구와 무기를 제작하여 자연을 개척하고 모든 인간을 평안히 살게 하고자 한 시대이다.

따라서 병목석기(並木石器)로 간단한 공구를 제작하여 짐승을 잡고 가죽을 벗기고, 나무를 자르며, 열매를 따서 저장하고, 적을 물리치고, 곡식 껍질을 벗기고, 동물을 잡아 해부도 하고, 집도 짓고, 문명의 이기를 이용할 수 있었으므로 생명을 보전할 수 있었다. 이때 생활환경은 짐승들이 많고 사람이 적었으므로 짐승들을 피해 나무 위에 집을 짓고, 낮에는 상수리와 밤을 줍고 밤에는 나무 위에서 휴식을 취하며 살았다. 그런 때문에 그 이름이 유소(有巢)씨이다.

위삼분(僞三墳)(경전의 일종)에 의하면 유소씨는 태고의 선성(先聖)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오로지 사람들의 생명을 안전케 하기 위해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게 하거나 굴을 파고 살도록 하였고, 그곳에 새고기와 짐승 고기를 쌓아 놓고, 초목의 열매를 모아 놓고, 그것을 먹으며 살도록 하였으므로 천하의 사람들이 그 뜻을 따라 살았으니, 유소씨가 비로소 임금으로써 등장하게 된 까닭이다.

예기예운(경전의 일종) 편에 따르면 옛날 선왕들은 궁실이 없었다. 그래서 겨울에는 굴을 파고 살았고 여름은 나무 위에 집을 짓고 망보면서 살았으며, 불이 없었을 때는 초목의 열매와 조수의 고기를 먹었으며, 그것들의 수분과 피를 마셨고 띠 풀잎과 그것들의 털로 몸을 감쌌다. 삼(麻)과 실(絲)이 발명되기 전에는 새의 깃털과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해 입었으며, 회남자에 의하면 태고 사람들은 풀잎을 덮고, 물을 마시며, 나무열매를 먹고, 새알과 그 고기를 먹고 살았는데, 그때는 많은 질병과 독이 있어 사람들이 그 해독의 상처를 입고 어렵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한다. 그런 때문에 유소씨 같은 성군이 나타나 백성들을 잘 다스렸으니, 가히 상상할 수 있다 했고, 또한 유소씨 시대의 공구와 무기는 목석병용(木石並用)으로 대자연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던 때문에 그런대로 짐승들을 피했고, 자연재해로부터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태고(太古)세계는 채집생활과 원시적 어로생활을 통하여 그 생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선천적으로 본성이 거칠고 투쟁적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집단생활을 통하여 상호유대를 강화하면서 생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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