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균택 (전) 대전대 부총장

황제헌원(黃帝軒轅:B.C 2679)씨는 염제신농씨의 후예이며, 자칭 백제자(白帝子)라 하였고, 누조(嫘祖)와 혼인하여 제1왕자인 현효(玄囂)와 제2왕자인 창의(昌意)와 제3왕자인 소호금천(小昊金天)씨를 낳았다. 황제의 제1왕자 현효의 증손이 제요도당(帝堯陶唐)씨이니, 황제(黃帝)의 고손자이며, 제요(帝堯)인 방훈(放勳)이니, 이 분이 고신(高辛)씨의 아들이고, 단군왕검이시다. 또 황제(黃帝)의 제2왕자인 창의(昌意)의 8세손이 제순유우(帝舜有虞)씨이며 황제(黃帝)의 9대손으로 제요도당(帝堯陶唐)씨를 이어 동이천자위(東夷天子位)에 오르니, 이가 곧 제순유우(帝舜有虞)씨인 순(舜)임금 이다.

황제(黃帝)는 낙서(洛書)를 집대성하여 도문자(陶文字)를 창도(創道)하였으며, 오륜거(五倫車)를 제작하여 문명세상을 만들었으니, 인류문명의 창시자로 갑골(甲骨)문자시대를 열어주었다.

한편 복희시대로부터 황제시대에 이르는 과정에서 결승(結繩), 하도(河圖), 낙서(洛書), 도문(陶文) 시대를 오면서, 인류문명은 동이 동방 천산곤륜(天山昆侖)으로부터 인도를 거쳐 지중해 연안 따라 수메르(Sumer)로 이동하여 이집트 나일 강까지 연결되었으니, 동이(東夷) 동방 천산곤륜(天山昆侖)의 하수(河水) 문명으로부터 전파되어 조선천축국인현 인도의 인더스 갠지스 문명을 일으켰고, 이 인도문명은 지중해 연안 따라 티그리스강과 유프라데스강 유역인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을 일으켰으며, 이 문명의 연장선상에서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 문명을 일으켰으니, 언어학상 인구어(印歐語)(인도 유럽어군)권을 형성한 것은 문명의 전이과정이 인도를 거쳐 서구에 연결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동이 동방 하수(河水)문명에서 성인(聖人) 공자가 나왔고, 이 뿌리에서 노자와 조선 천축국(天竺國)의 석가가 나왔으며, 이 문명 연장선상에서 서촉국의 예수가 나왔고, 이 연장선상에서 마호멧이 나타났다. 따라서 문자와 언어 발달 과정에서 동방 표의(表意)문자의 뿌리에서 동서 각각 다른 표음문자로 나누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동방의 인류세계 최초로 산수가림다토(刪修加臨多吐) 방언(方言)문자 38자는 동방 표음 문자이며, 이것에서 파생된 설형 문자는 서방표음문자인 산스크리트 방언문자로 이것을 슈메르, 고린도문자라 했는데, 후에 알파벳 ABCD…가 되었다. 때문에 동방 표음문자는 이두에서 파생한 산스크리트어 한국의 한글, 중국의 주음부호, 일본의 가타가나 히라가나, 몽고어 등이며, 서방 표음문자인 ABCD는 영국, 소련, 불란서, 독일, 기타 서구 각국의 언어 문자 등이다.

오늘날 세계 인류 언어는 모두 한문(韓文)인 표의문자에서 표기된 표음문자란 것을 인류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세계에서 통용 사용되는 표음문자는 영어의 알파벳 26자 중 모음 5字 자음 21字이며 한글28자 중 모음 14자 자음 14자로 통일되었으니,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구강음(口腔音)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문(韓文)인 표의문자는 육서(六書)로 수많은 뜻을 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표음문자인 영어의 알파벳 26字나 한글의 28字로 제한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한문(韓文)인 표의문자는 무한한 진리를 무한한 표식(表識)으로 정리 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음문자는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까닭은 표음은 구강(口腔)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제왕세기(帝王世紀)에는 황제(黃帝)는 수구(壽丘)에서 출생했다고 하고, 다스린 나라는 유웅국(有熊國)이라 하였다. 사기정의(史記正義)(책이름)에는 수구(壽丘)는 로(魯)의 동문북(東門北)쪽이라 하고 지금 연주곡부현 동북쪽 6리라 했으며, 사기집해(史記集解)(책이름) 황포시에는 유웅(有熊) 즉 지금 하남신증이라 하였다. 이렇게 역사의 사실들을 근거 없이 지나한(支那漢)의 사마천은 그의 사기에서 말하고 있다. 황당무계한 왜곡이다.

죽서기년(竹書紀年)(책이름)에는 황제는 낙수(洛水)에 제사했다 하고, 여지기(與地記)(책이름)에는 탁록(𣵠鹿)은 본시 팽성(彭城)이며, 황제가 처음 도읍했다가 유웅(有熊)으로 천도했다고 한다. 또 사기(史記)에는 헌원지구(軒轅之丘)가 도읍지라 했고, 황제는 천수(天水)에서 출생했으며 진창(陳倉)이 근거지가 되었고, 정병을 거느렸으며, 서도로 발전했다고 하는데, 진창(陳倉) 즉 협서보계현(陜西寶鷄縣) 동쪽이라 하니, 천수(天水)와 더불어 위수류역(渭水流域)에 속하니, 서로 거리가 불과 백여 공리(公里)(몇 킬로)에 해당한다.

저작권자 © GNB온세계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