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빈(대전대문중학교 2학년 1반)

우리나라 사람들 3명 중 1명은 대개 암에 걸린다고 한다. 그만큼 걸리기 쉬운 병이 암이라지만 그 한명에 우리 할머니도 포함될 줄은 전혀 몰랐다. 내게 조부모님은 외할머니밖에 안 계셔서 나에게 우리 할머니는 특별한 존재이시다. 그래서 림프종 암 진단을 받으셨을 때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우리 집이 할머니 댁과 가까워 어렸을 때는 자주 놀러가서 벽난로에 고구마도 구워먹고, 집에 맛있는 것이 있으면 갖다드리곤 했었는데 엄마는 깻잎농사로 바쁘시고 나는 한참 공부해야 할 시기여서 최근에는 자주 뵙지 못했었다. 할머니가 암에 걸리신 것이 우리 탓인 것 같아 마음이 쓰고 버거웠다.

할머니께서 암 수술을 받으시고 무시무시한 항암치료를 받으실 때 하필 난 수학 경시대회를 앞 둔 때였다. 하지만 무서운 방에서 홀로 계실 할머니를 생각하니 앉아서 공부하고 있을 순 없었다. ‘얼마나 무서우실까… 우리가 무척 보고 싶으실 텐데….’ 마음을 졸이며 헐레벌떡 짐을 싸고 할머니 댁에 갔다. 밥도 잘 못 드시고 움직이시지도 못하시는 할머니를 보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뽀얗게 앉은 집안 먼지를 닦아내고, 밥을 차리고, 하다 보니 문득 우리 엄마 생각이 났다. 나에겐 할머니지만, 우리 엄마한테는 엄마였다.

우리 엄마는 깻잎 농사를 하신다. 매년 그 넓디넓은 땅을 다 일구고 가꾸어 내신다. 매달 나가는 내 학원비며 동생 어린이집 원비며 어디 나갈 틈이 한 둘이랴! 모든 것이 엄마의 짐이 되어버려 너무 죄송스럽다. 언젠가 깻잎을 판매용 상자에 담고 계시는 엄마의 손을 자세히 보게 되었는데, 너무 아팠다. 내 마음이. 하얗고 보드라웠을 거라고 상상할 수가 없었다. 가뭄 온 땅처럼 쩍쩍 갈라지고 군데군데 물집도 잡혀있던 잊을 수 없는 엄마의 손. 그 손이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던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나는 다짐했다. 어느 순간이든지 엄마를 행복하게 해 드려야겠다고.

지난 여름동안, 하루 종일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실 엄마를 생각하면 도저히 방과 후에 친구들과 놀 시간이 없었다. 내가 집에 빨리 와야, 어린 동생과 집안일을 내게 맡기시고 해 지기 전에 밭으로 가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원에서도 최대한 빨리 나왔다. 항상 숙제를 완벽하게 해가서 검사를 제일 일찍 맡고 총알처럼 뛰어나갔다. 동생 밥을 먹이고, 청소기를 돌리고, 공부도 해야 하고 엄마 농사일도 도와드리는 것은 내게 많이 힘들었다. 그 때마다 우리 엄마의 손을 떠올리며 기쁘게 일을 도와드렸다. 나는 하나라도 엄마의 짐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한밤중까지 일하시는 우리 엄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도와드리려 노력했다. 내가 엄마를 도우러 밭에 갈 때면 그 때마다 집에 가라고 하시지만 무척 기뻐하시고 뿌듯해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깻잎을 따면서 엄마 힘들었던 이야기도 들어드리고 위로도 해드리니 마치 내가 엄마의 버팀목이 된 것 같아 감사했다.

11월 초이면 깻잎의 철이 끝나 가는데, 서리를 맞아 죽지 않게 하우스에 비닐을 치는 일을 도와드렸었다. 허리하고 팔이 끊어지는 듯 했다. 엄마는 비닐을 철봉 위로 올리시고 나는 잡아당기는 일이었다. 마치 내가 지구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엄마 얼굴 위로 흐르는 땀방울을 보니 ‘새발의 피였구나.’하고 느꼈다. 어찌 보면 이번 여름과 가을 동안 엄청난 일을 한 것처럼 보이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로 부모님을 섬겨드리는 것이고, 그것은 지극히 마땅하다는 것과 아름답다는 것이다. 내가 엄마를 도와드릴 때, 동네 어르신들이 항상 내 칭찬을 침이 마르도록 해주셨다. 칭찬을 계속 들으니 그 칭찬이 어느새 내 일부가 되어 있었고 내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우리 엄마가 내 자랑을 입에서 놓지 않으시고 자랑스러워 하셔서 너무 행복하다. 지금 할머니는 많이 나아지셨고 회복 중에 계신다. 앞으로도 더욱 자주 찾아뵈어야겠다. 나를 아끼시는 우리 엄마, 그리고 할머니. 사랑하고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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