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균택 (전) 대전대 부총장

신고한국사에는 고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고려의 지방관제는 변경이 잦았다. 개성부(開城府)(개성도내(開城都內)의 행정과 6적현(六赤縣) 및 6기현(六畿縣)을 통치함을 제외하고는 전국을 10도로 행정구역을 구분하였으나, 도의 지역도 변동이 수차 있었으며 지방관(地方官) 관호(官號)의 변천도 심하여 그 갈래를 잡기 어려우나, 그 대강은 다음과 같다. (가) 삼경(三京) 유수(留守), 서경(西京)은 현 평양(平陽), 동경(東京)은 경주(慶州) 및 남경(南京)을 삼경(三京)으로 하고 유수(留守)를 두어 행정을 통할케 하였다. (나) 사대도호부(四大都護府): 요충지인 ①안남(安南) ②안동(安東) ③안변(安邊) ④안북(安北) 등 대도호부(大都護府)를 설치하고 도호부사(都護府使)를 두어 관하(管下)의 행정과 군정을 통할케 하였다.’

그러나 고려의 사대도호부(四大都護府)는 반도 땅이 아닌 중원대륙이다. ①안남(安南)은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이며 본래 교주도독부(交州都督府)였는데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라 개칭했으며, 동경주(東京州)의 하내(河內)에 성(城)을 두었고, 해남제국(海南諸國)과 경내제주(境內諸州)를 통치하였다. 한때는 진남도호부(鎭南都護府)라 개명했었고 때로는 안서(安西), 안북(安北), 단우(單于) 삼부(三府)를 일컬어 대도호부(大都護府)라 하였고 북정(北庭), 안동(安東), 안남(安南) 삼부(三府)를 일컬어 중도호부(中都護府)라 일컬었다. ②안동(安東)은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이며 해동제국(海東諸國)을 통치하였다. 동이주류(東夷主流) 통일신라가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통치했다고 했으며 그 후 발해를 거쳐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 30,000리 천자대국으로 이곳을 통치하였다. ③안변(安邊)은 안변도호부(安邊都護府)이며, 협서정변현(陜西定變縣) 동쪽 100리에 있는데, 옛날에는 안변영(安邊營)이라 했고, 안변보(安邊堡)라고도 했다. 안변영(安邊營) 60리에 성이 있는데, 산은 뒤에 있고 앞에는 강이 흐른다. 사천성고현(四川省高縣) 북쪽 100보에 있다. ④안북(安北)은 안북도호부(安北都護府)이며 관내도(關內道)에 있다. 옛날에 연연도호부(燕然都護府)가 설치되었었다. 지금 내몽고오랄특기(內蒙古烏剌特旗)의 서쪽 경계이다. 하수(河水) 북안(北岸)에 있고 진북도호부(鎭北都護府)라 했었다. ⑤ 안남도독부(安南都督府)는 안남(安南)과 토번(吐蕃)지역으로 고려조선조 말에 문익점이 이곳에 교지(交趾) 도독으로 있다가 고려가 심양에서 망하자 이성계를 따라 반도산청으로 내려와 그곳에서 죽었다. 개성부(開城府)는 이것을 개성현(開成縣)이라 하는데 개성진(開城鎭)이라고도 한다. 안휘성(安徽省) 무위현(無爲縣) 서쪽 40리에 있다. 원(元)나라 때 원이 빼앗고 주(州)라 하였다. 또 개주(開州)는 본시 예맥(濊貊)의 땅이다. 고려(高麗) 때는 이곳을 경주(慶州)라 하였다. 첩석(疊石)으로 성이 되었고 주위가 20리이다. 그 대장 온사문(溫沙門)이 웅산(熊山)에서 전쟁할 때 석성(石城)에서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사로잡았다 했으며, 글안이 발해 일부를 점령할 때 이곳을 점령했었다.

개봉부(開封府)는 전국(戰國)때 위(魏)나라 도읍지(都邑地)였고 또 동경개봉부(東京開封府)라 했으며, 북경(北京)은 도읍지이고 이곳을 남경(南京)이라 개명했고, 고려천자나라를 도적질한 주원장 명초기에는 북경을 개봉부(開封府)라 하였다. 10도는 ①관내도(關內道) ②하남도(河南道) ③하동도(河東道) ④하북도(河北道) ⑤산남도(山南道) ⑥롱우도(籠右道) ⑦회남도(淮南道) ⑧강서도(江西道) ⑨검남도(劍南道) ⑩영남도(嶺南道)이며, 후에 경기도(京畿道), 도기도(都畿道), 회남도(淮南道)라 하여 13도가 되었다. 천주(泉州)는 고려의 주(州) 이름의 하나이다. 복건민후현(福建閩侯縣)인데 민현(閩縣)을 천주(泉州)라 했고 그 후 민주(閩州)라 했으며 또 복주(福州)라 했다. 무영주(武榮州)라고도 했다가 청원군(淸源郡)이라 개명했다. 그 후 천주청원군(泉州淸源郡)이라 했고 지금은 복건진강현(福建晋江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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