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균택 (전) 대전대 부총장

이성계는 고려조선 공민천자로부터 천자옥새를 빼앗아 강남지나(江南支那) 반란도적 수장인 주원장에게 넘겨주었고, 도적이 고려조선 삼만리 강토의 천자가 되었다. 이 때 명 주원장으로부터 간도인 대련반도와 한반도, 일본열도까지 통치권을 위탁 받고 주원장 도적의 가신으로 제후왕을 봉작 받으니 유명이씨조선(有名李氏朝鮮) 제후왕으로 개성 수창궁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왕이 되어 조선을 건국하였다(1392).
태조는 교통과 국방의 중심지인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후, 도성을 쌓고 경복궁을 비롯한 궁궐, 종묘, 사직, 관아, 학교, 시장, 도로 등을 건설하여 도읍의 기틀을 다졌다.

초창기의 문물제도를 갖추는 데 크게 공헌한 사람은 정도전이었다. 그는 민본적 통치 규범을 마련하고, 재상 중심의 정치를 주장하였다. 또, 불씨잡변을 통하여 불교를 비판하였으며,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확립시켰다.

두 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을 통하여 개국공신 세력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태종은 왕권을 강화하고 국왕 중심의 통치 체제를 정비하고자 하였다. 태종은 6조 직계제를 채택하였으며, 언론 기관인 사간원을 독립시켜 대신들을 견제하였다. 또, 양전 사업과 호구 파악에 노력을 기울였으며, 호패법을 실시하였고, 사원의 토지를 몰수하고, 억울한 노비를 조사하여 해방시켰다. 아울러 사병을 없애 왕이 군사 지휘권을 장악하면서 친위 군사를 늘렸다.

이때 홍봉한의 증보문헌비고에는 조선총인구호수가 15만호에 32만명이었다고 기록됐다.(태종 4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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