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태승 수필가.(전)대전노은고 교장

오랜만에 친구들과 함께 새만금방조제에 들어섰다. 짙은 안개[海霧]에 싸인 방조제 길은 꿈속을 거니는 것 같다. 군산에서 비금도와 해넘이휴게소를 지나 돌고래쉼터에서 차를 멈추고 잠시 쉬었다. 수평선이 앞에서 펼쳐 보이고 옆으로 지평선이 보이니 한 자리에서 수평선과 지평선을 바라보는 좋은 행운을 맛보았다.

새만금방조제는 설계에서 완공까지 우리 기술로 33km를 완공한 세계 공인 최장 규모 공사이다(2010. 8. 2 기네스북에 등재). 군산과 변산반도의 바다에 돌과 흙을 쌓고 가로막아 상전벽해를 만들어 놓았으니 우리 국력과 기술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평균 34m 수심에서 초당 평균 7m의 유속(流速)을 이겨내고 순수 우리 기술로 이루어낸 고난도 심해공사였기에 그 가치가 더욱 크고 놀랍다. 4차선 차도 제방이 준공되기까지 237만 명이 동원되었으니 대단한 규모이다. 방조제 바닥 너비는 평균 290m, 높이는 평균 36m, 소요예산 2조 9천억 원, 공사기간은 1991년부터 2010년 4월까지 무려 20년이나 걸렸다. 그동안 환경논쟁과 정치논쟁의 틈바구니에서 두 차례나 공사가 중단되어 큰 손실을 겪었고, 우여곡절 끝에 완공되었지만, 이제부터는 1억 2천만 평의 제방 안쪽 바다를 메우는 토지조성공사가 남아 있다.

야미도광장을 지나 신시도 자연쉼터에 닿았다. 방조제 중간 지점인 이곳에 배수갑문이 있고, 주차장 앞 광장에 대형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조형물 초석에 ‘새만금 대한민국 녹색희망’ 글씨가 뚜렷하다. 주차장에서 바라보니 월영봉이 우뚝 솟아 있다. 신시도는 신라 말 고운 최치원 선생이 부성태수에서 물러난 한 때 이곳에서 거문고를 벗 삼아 풍류를 즐기며 지냈던 곳이다. 그의 향기와 자취를 찾아 월영봉을 향해 산자락을 오르기 시작한다. 경사가 퍽 가파르다. 숨을 헐떡이며 철계단을 지나 첫 능선에 오른다. 고군산군도의 올망졸망한 섬들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썰물이 지나간 개펄에서 조개를 캐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정겹다. 호미 끝에 묻어나는 갯내음을 맡아보고 싶다. 바위 능선길을 따라 월영재로 내려와 정자에서 숨을 고르고 월영봉을 향해 오른다. 소나무 숲 솔향이 향기롭다. 가파른 오르막길에 바위들의 주상절리가 병풍처럼 둘러쳐 있어 경관이 퍽 아름답다.

월영봉 정상에 오르니 돌탑을 쌓아 놓았다. 사람들의 소망을 담아 정성을 쌓은 것이리라. ‘월영봉(해발185m)’ 팻말이 소나무에 걸려 있고, 최치원 선생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그의 풍류가락이 바다 건너 당나라에도 전해졌을까?

그는 12세에 청운의 꿈을 안고 당나라에 건너나 6년 만에 과거에 장원급제하자 당 황제는 그에게 자금어대(紫金魚袋)를 내린다. 황소(黃巢)가 황제에 반기를 들고 난을 일으켜 당나라가 위기에 빠지자 토황소격문(討黃巢激文)을 지어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예나 지금이나 영예의 그늘에는 시기와 질투가 번득였을 것이고 그 나라 젊은이들의 눈초리가 고왔을 리 없을 것이다. 그는 28세에 당나라 벼슬을 그만두고 조국 신라로 돌아왔지만, 신라는 국운이 기울어가고 있었다. 그가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시무십조(時務十條)를 올렸지만 조정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에게 내린 관직은 겨우 변방의 부성(오늘의 서산)태수이다. 그는 임기를 마치고 충남 가야산 기슭에서 젊은이들을 가르치다 신시도에서 잠시 머물렀고, 그 뒤 천령(함양)태수로 부임하여 상림을 조성하고 풍수해를 막도록 하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경상도 가야산 홍류동에서 은거하다 세속의 삶을 등지고 홀연히 종적을 감추고 만다.

그 원대한 경륜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지 못하고 표연히 사라져 간 고고한 선비, 충남 가야산 강당골 아래서는 유림들이 해마다 고운 선생 제사를 지금까지 지내오고 있다. 문득 최치원 선생의 시 한 수를 떠올려 본다.
 

秋風惟苦吟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나니
世路小知音 세상에 나를 알아 줄 이 적구나
窓外三更雨 창밖에 밤비 내리는데
燈前萬里心 등 앞의 외로운 마음 만리를 달리네
 

고운이 멀리 당나라 유학시절에 외로이 품었던 그 때의 객수(客愁)가 다시 천 년 뒤에 신시도 월영봉을 거니는 길손의 가슴에 와 닿는 것 같다. 바다와 산 그리고 해안의 절경, 그 멋스러운 매력에 많은 발길들이 찾아드는 곳이지만 내려다보이는 바닷가는 한적하다. 겨울을 빠져나온 봄이 아직 이른 탓이리라. 해거름에 노을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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