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영(대전목동초등학교 5학년)

나의 별명은 ‘효녀 다영’입니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성실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보다 한 살 아래인 동생을 잘 돌보고 챙기며, 맏딸 노릇을 잘 했다고 하여 이런 별명을 붙여주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이 별명으로 나는 늘 효녀답게 행동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어린이집 다닐 때는 선생님들로부터 언니 같다는 말을 자주 들었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또래친구들을 잘 챙겨주어 상도 받았습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동생에게는 정말 믿음직한 언니 노릇을 잘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동생이 1학년 때는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기도 하고, 2학년 때는 동생을 괴롭히는 남자아이를 혼내 주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역시 다영이다.” “우리 큰딸이 엄마 아빠 대신해서 동생도 잘 돌보아 주는구나.”라고 하셨습니다. 난 그럴 때마다 어깨가 우쭐해졌고 ‘난 부모님께 효도를 잘하는 어린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막내 동생이 태어나면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내 나이 12살, 5학년 봄에 막내 동생이 태어났습니다. 모든 것을 잘한다고 생각했던 나인데 엄마가 임신을 하는 순간부터 내 스스로 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면서 내가 정말 ‘효녀 다영’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까닭은 엄마의 배가 완전히 부를 때까지 나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긴 머리를 혼자 못 감아서 엄마가 배가 불러오는데도 머리를 감겨 주셨고, 학교 가는 날 아침에 꼭 깨워줘야 일어났으며, 학교 준비물 챙기기, 숙제와 시험기간에 공부까지 일일이 엄마가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아이였던 거였습니다. 심지어 난 자장면도 못 비비는 유치원수준의 아이였습니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는 엄마를 보면서 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우왕좌왕하고 한숨도 쉬고 빨리 머리를 감겨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실내화를 처음 빤 날은 팔이 아팠고 왜 이렇게 더럽게 신은건지 내 발이 미웠습니다. 지금은 능숙하게 대충 솔로 비벼서 꼼꼼하진 않지만 스스로 빱니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점점 하다 보니 익숙해져서 머리도 능숙하게 감고 시험기간에는 엄마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 문제집을 풀었습니다. 자장면도 스스로 비벼먹고, 아침에 휴대폰 알람에 맞춰 혼자 일어났습니다. 이제 내 일을 혼자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설거지도 하고, 막내 동생이 울면 안아주고, 엄마 몰래 빨래를 개는 등 부모님을 돕고 있습니다. 그런 행동을 하니깐 다시 ‘효녀 다영’이라는 말을 다시 듣게 되었고, 나는 더 열심히 효를 실천하였습니다. 부모님이 모기에 물리시면 등에 물파스도 발라드리기, 어깨 안마해드리기, 흰머리 뽑기 등 작은 효도도 실천하고 있습니다.

내가 효를 실천하면 부모님은 행복해서 웃고, 나는 뿌듯해서 웃게 됩니다. 몸이 커질수록 내 마음도, 효도도 점점 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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